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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Digilog)시대 사인 만물상
2007-05-01 |   지면 발행 ( 2007년 5월호 - 전체 보기 )

디지로그(Digilog)시대 사인 만물상
관수동 집중해부, 100% 활용하기


이번 호에는 지난 수년 간 사인 관련업체가 집단으로 모여서 활동하고 있는 지역으로 성장해 온 서울 관수동을 집중해부한다. 관수동은 수작업에 의존하는 아날로그 사인과 컴퓨터 시스템을 활용한 실사연출과 조각기 등 디지털 사인이 공존하고 있는데 아날로그의 비중이 훨씬 크다. 그야말로 디지로그 시대를 적나라하게 반영한 곳이 바로 관수동인 것이다.
우선 관수동이 사인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기능에 대해 과거, 현재를 조망해보고 미래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짚어본다. 특히 아크릴 가공, 조각, 표찰, 주물, 부식, 문자 가공, 채널사인, 실사연출, 기타 부자재 등 각 아이템별로 변화사항을 점검해보고 최근 중요 이슈를 점검한다.
이와 함께 관수동 지역에서 분포도가 높은 상패, 판촉물 업체들의 실사연출기 도입, 아크릴 가공업체들의 조각기 도입 등 최근 트렌드를 점검해보고 시장 확대 가능성을 점쳐본다. 그리고 관수동 업체를 많이 활용하는 사인 업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관수동을 100% 활용하는 방법과 노하우를 살펴본다.

글ㆍ사진 : 편집부




○ 관수동, 어떻게 변해왔나?
청계천을 관망하는 사인업계의 대표적인 집적상권
서울 관수동은 북쪽으로는 종로3가, 남쪽으로는 수표동·입정동, 동쪽으로는 장사동, 서쪽으로는 관철동·체부동을 접하고 있는 블럭지역이다. 청계천로를 따라 북측은 도심 서비스 지역, 남측은 도심 상업지역을 구성하고 있지만 속 알맹이는 소규모 사인 관련업체들이 주류인 저층 노후건물군으로 분류한다.
본디 그 뜻은 청계천 한 자락에 자리를 잡아 위치적인 특성상 ‘청계천 흐르는 물은 관망한다’는 뜻으로 ‘관(觀)수(水)’를 사용하는데 지난 1955년 광통교 부근 약 136m를 복개한 것을 시작으로 1977년 신답철교까지 복개해 2003년 7월 땅 위로 빤짝이는 청계천으로 또다시 바뀌기까지 근 30년 동안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청계천이 잠시 시야에서 사라져 복개천으로 땅 밑을 유유히 흐르는 사이에 관수동은 그 자리에서 새로운 명성을 얻었다. 1950년대 말 쓰레기와 악취를 떠올렸던 도심의 폐허에서 60~70년대 청계고가도로가 건설 이후 근대화의 상징으로, 80~90년대는 공구, 인쇄, 의류 산업 등으로 명성을 날리며 혼잡한 도심의 상징으로써, 그리고 사인업계의 대표적인 집적상권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인 제작, 상패 제작, 부식·공업사로 나뉘는 세 가지 상권
20여 년 전 3~4개 채널사인 제작업체와 부식, 목재, 기타 소규모 사인 제작업체 등 15~16개 업체로 시작했던 소규모 집단에서 현재는 그 수를 정확히 헤아릴 수 없이 골목 구석구석을 총 틀어 700~800개 점포가 있음을 짐작할 뿐이다. 대충 아무 점포나 들어가 경력을 물어도 막내가 10년차 이상이다.
최근 관수동은 크게 세 가지 상권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인관련 제작업체, 상패 제작업체, 부식 등 기타 기계 관련 업체 등 종로 3가를 기준으로 종로, 삼일로변은 십 여 년 전부터 상패를 제작하는 업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자리를 잡았고 청계천로를 중심으로 북쪽은 채널과 스카시 등 사인관련 제작업체, 국일관을 등지고 청계천으로 향하는 골목 어귀에는 부식업체들이 나름 소집단을 형성하는 것.
원래 상패제작 업체는 관수동보다 관철동 쪽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지만 십 여 년 전부터 단성사 뒤편을 중심으로 금은보석을 다루는 업체들이 증가하면서 건물 임대료가 올라 대부분이 관수동으로 이전, 현재와 같은 상권을 형성했다고 한다. 또 채널사인 제작업체는 최근 간판규제와 관공서 등의 간판정비 사업에서 채널사인을 장려하면서 꾸준히 증가해 약 70~80개 업체로 증가 관수동 상권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도 흐릿한 경계로 각인할 뿐이다. 실제로 부식 등을 다루는 업체는 오염물질 배출과 관련한 문제로 허가제이기 때문에 처음 점포를 시작한 자리에서 이전하기가 쉽지 않아 대부분 구석구석에서 20여 년 전 시작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현재는 대략 30여 개 부식업체가 있으며 대부분 관수동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해 독립한 업체들로 관수동 부식 협의회라는 단체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원스톱 서비스로 ‘만능’을 실현하는 커뮤니티
관수동 내 커뮤니티의 특징은 간단히 말해 ‘줄기세포’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부식업체부터 대부분 업체들 역시 기존 관수동에 입점해 있던 점포에서 일을 배워 새로 개업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한국휘장업협의회라는 대표적인 단체가 있지만 부분별, 업종별로 소규모 단체를 만들어 친목을 도모하고 공동 커뮤니티를 강화, 관수동에 가면 어떤 사인이든 다 제작이 가능하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커뮤니티를 원동력으로 탄생한 명성이라는 전문이다. 사인제작과 관련한 다양한 업종들이 산재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 업체에 일을 맡겨도 관수동 내 커뮤니티를 통해 소비자가 일일이 과정별로 업체를 찾아다니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성싸인의 김익겸 대표는 “약 15년 전부터 사인 제작업체에서 일을 배우며 시작, 십년 전부터 개인 점포를 오픈해 채널사인을 비롯한 각종 사인관련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관수동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 ‘관수동에 가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수동을 찾는 사람 중에는 서울에 있는 사인업체들도 많지만 멀리 제주도까지 주로 지방에서 섬세하게 다루기 힘든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 것을 감안하면 이곳저곳 헤맬 필요 없이 한곳에서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라고 말한다.
김익겸 대표는 친형의 사인업체에서 일을 배우다 독립을 했다고 한다. 예원사인채널의 김송겸 대표, 근처에 또다른 사인제작업체를 운영하는 친척까지 관수동에서 이름의 ‘겸’자 돌림을 인용해 ‘겸패밀리’라는 별명이 붙어있을 정도로 대표적인 사인제작 혈연 커뮤니티로 실제로도 서로 정보교환과 제작 등에 관해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 아날로그 사인, 그 변하지 않는 명성
소품종 주문제작, 노련한 손길로 관수동의 붐비는 오후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해 상당수 사인 제작방식이 디지털 기술로 변했지만 여전히 장인의 손길이 묻어나는 아날로그 사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하지 못한다. 관수동은 수작업으로 만드는 채널사인, 테두리 따내기 문자(스카시), 주물, 부식 등 거의 모든 공정을 아날로그에 의존하는 사인 관련업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디지털 사인 관련업체의 비중보다 훨씬 높다.
아날로그의 특징 중 하나인 소품종 주문제작이 가능하다는 점은 관수동의 큰 매력으로 꼽힌다. 관수동은 협소하고 낡은 점포의 특성상 대형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대량으로 물건을 찍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소품종 주문생산을 위주로 한다. 이는 오래된 장인들의 기술이 뒷받침하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실제 최근 채널사인 제작업체 중에는 자동 채널절곡기 등 대량 물량에 대비해 각종 대형 자동화 장비 등을 들여놓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관수동에서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기계를 들여놓을 공간도 없을뿐더러 작업자들의 기술력이 뛰어나 수작업으로 하는 것이 자동화장비의 생산성 못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기존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수동에 있는 점포에 들어서는 신규고객 중 80% 이상은 가장 첫마디로 “~~~가 가능합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러면 100이면 100 모두 미리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능한 상황과 비용과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한 대체 방안들이 계산기 누르듯 우수수 쏟아진다. 그야말로 기성품은 없다. 고객이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생산할 뿐이다.
최근에는 관수동을 직접 찾는 고객들도 많이 있지만 주로 인터넷이나 전화를 통해 주문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웹하드나 이메일을 통해 시안 등을 제시하고 전화로 설명을 하거나 시안 등을 제시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면 방문과 전화상담을 통해 추가비용을 약간 지불하고 시안부터 주문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처리한다.
관수동의 아침은 한적한데 비해 오후 4~5시에 오토바이와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오전시간은 영업준비와 주문 등을 받고 부지런히 작업물량을 소화, 4~5시에는 퀵서비스를 통해 완제품을 납품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수동을 찾아 상담과 함께 제품을 의뢰하고자 하는 고객은 주로 오전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한 업체당 2~3개 퀵서비스 업체를 활용, 제품을 납품하고 있으며 때로는 직접 찾아와서 물건을 찾아가는 고객도 있어 관수동의 오후시간은 분주하기만 하다.

수조각 목간판을 위시한 공예사인 천국
나무만큼 오래된 사인소재도 드물고 관수동만큼 목재사인에 대한 깊은 노하우가 쌓인 곳도 드물다. 그야말로 목재사인은 아날로그 사인의 정수다. 현재 관수동에서 목재사인을 제작하는 업체는 약 10여 개가 있다. 각 업체 앞에 늘어선 목간판들을 보면 언뜻 단순해 보이고 다 비슷해 보이지만 이를 주문하는 소비자들은 입을 모아 최고라 말한다.
1995년 목간판 업체로 관수동에 입점한 대일공예 박찬무 대표는 “최근 사인시장이 불경기라고 하는데 목간판 분야와는 상관관계가 없는 듯하다. 과거에는 목재를 이용해 사인을 제작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현재는 다양한 소재가 등장해 목재를 이용한 사인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뉴 테크놀러지가 만연한 현 시대가 요구하는 것 중 하나가 자연스러움이다. 언뜻 논리적인 상관성이 떠오르지 않겠지만 목재사인이 주는 따뜻함과 정감이 그 수요를 꾸준히 유지하게 해주는 이유다”라며 목재사인의 지속적인 수요를 말했다.
또 다른 목간판 업체인 두손공예 송명환 대표는 “목재사인 중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목간판이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목간판을 제작하는 업체 대부분이 관수동에 위치한다. 관수동에 대해 사람들은 한마디로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고 말한다. 깔끔한 외관처리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예를 들어 목간판 제작 시 필요한 코팅작업에 있어서도 타 지역 업체에 비해 배 이상 작업시간과 노력을 들이기 때문이다. 전국에 걸쳐 목간판 중 70~80% 이상이 관수동에서 제작한 제품이다”라고 목간판의 품질에 대한 신뢰성을 언급했는데 이를 미뤄봤을 때 은연중 목재사인과 관수동이 우리네 일상 곳곳에 묻어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한편,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목간판에서 나아가 장비를 도입해 새로운 영역을 확보하는 경우도 등장한다. 대일공예 박찬무 대표는 “일반적인 목간판 제작에 그치지 않고 지난 2002년부터 샌드블래스터를 도입해 더욱 다양하고 입체적인 목재사인을 제작하고 있다. 장비 도입은 오래전부터 구상했으나 장소와 가격문제로 신중하게 결정했는데 새로운 아이템과 전략이 뒤받침돼야 더욱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생각에 구입을 결정했다. 장비로 제작한 제품에 대한 구매층은 주로 관공서인데, 관공서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은 다소 가격이 높더라도 디자인이 우수한 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에 입체적인 목재사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소비자들은 제품의 질이 뛰어나다는 관수동의 기존 이미지에 앞으로는 제품의 다양성과 디자인성까지 갖춘 관수동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라며 관수동의 이미지 업그레이드까지 고려한 장비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주변에 금속가공 관련업체 많아 효율적으로 작업
지난 1980~90년대 관수동은 휘장업체가 주를 이뤘고 현재도 그 규모는 상당하지만 과거에 비해 줄어든 상황이다. 반면 사인과 직접 관련한 업체 수가 증가했는데 고급화를 지향하는 사인시장의 트렌드에 따라 입체사인, 즉 채널사인을 다루는 업체의 분포도가 그 중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관수동에 위치한 채널업체들은 규모가 영세한 곳이 대부분이지만 고유한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어 최근 경기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칠 줄 모르고 꾸준한 물량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기성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단골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주문생산방식으로 운영하는 업체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주물분야는 용광로를 설치해야 한다는 특성 때문에 도심에는 설치할 수 없어 대부분 관수동에 몇 개 사무실만 둔 채 실제로는 경기도 지역에 공장을 형성, 주문만 받아 제작을 하고 있다.
2004년 채널 제작업체로 관수동에 입점한 세진기획 김충길 대표는 “채널제작은 철판 가공, 도색, 코팅 등 금속 가공업체와 많은 연관이 돼 있는 분야인데 이렇게 다양한 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관수동은 채널 일을 진행하기에 매우 적합하다”라며 관수동에 입점한 이유를 밝혔는데 타 업체와 유기적으로 연관돼있어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관수동의 채널사인 경기는 호황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김충길 대표는 “과거에 비해 채널업체가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치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재비와 인건비는 계속 치솟고 있는데 완제품 가격은 거의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수동이라는 메리트를 과거의 명성에 걸맞게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각 업체들이 변하고 있는 시장의 흐름을 적절히 파악하고 기존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인 품질에 더욱 정진해야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채널, 스카시 관련업체만 약 60여 개 활동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하는 사인의 소재 부분에서도 시대의 트렌드를 가장 먼저 살펴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관수동이다. 최근 소비자들은 채널 소재로 통신주와 크롬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이 소재들은 보존성이 뛰어나고 디자인 면에서도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표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채널관련 사업을 하기에 관수동이라는 지리적 이점은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다양한 업체들이 각축을 이루고 있는 곳이 관수동이긴 하지만 그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휘장 업계와 연계할 수 있는 플러스 효과가 채널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단순히 채널사인 하나만 봤을 때는 큰 메리트를 찾기 어렵지만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업체들이 몰려있는 지역인 만큼 채널제작과 연관한 작업을 매끄럽게 수행하기에 관수동은 상당히 수월하다.
최근 엑시즈(AXYZ) 라우터를 도입해 사업을 확장한 세종SC 이경환 상무는 “채널 제작 시 반드시 수반하는 철판 광택(일명 빠우)과 코팅 작업은 전국에 위치한 대부분 업체들이 관수동 업체에 맡기는 것이 대부분인 것을 참작한다면 채널 산업에 대한 관수동의 지역적 메리트는 상당하다. 즉, 한 지역에서 제품 제작과정이 일괄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은 바로 소비자들의 경비절감으로 이어지는 시너지 효과를 낳는다”고 말한다.
관수동에 위치한 채널, 문자업체는 대략 60군데로 테두리 따내기와 채널사인이 주를 이룬다. 그 중 1인 경영체제로 운영하는 업체가 1/3 정도인데 이 업체에서는 대량 물량을 소화하지 못하지만 섬세하고 정교한 작업을 요하는 작업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 노하우를 갖춘 전문가 2~3명으로 구성한 업체가 전체 중에서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문자 따내기와 채널사인 제작을 병행하고 있다.
그리고 3명 이상으로 구성한 업체는 10군데 미만으로 전문성을 갖춘 작업자들은 물론 레이저 조각기, 라우터 등 최신 디지털 장비를 갖추고 있어 품질을 보장하면서도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 실사연출, 컴퓨터 조각기, LED로 디지털화
라우터, 레이저 조각기 서서히 도입 중
관수동 인근에서 벌어진 청계천 복원사업의 영향은 거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 채널사인 제작자는 “전체 고객 중 직접 방문하는 고객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청계천 고가도로 철거로 인한 교통문제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사인문화》 등 각종 매체를 통해 관수동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늘어 홈페이지와 카탈로그 업데이트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한편, 방문 고객이 줄어 제품을 직접 배달하는 사례가 늘었는데 이 역시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편할 것이다”라며 최근 소비자들의 관수동 접촉루트와 제품 운송에 대한 편리함을 설명했다.
80~90년대는 대부분 공정을 수작업으로 처리했는데 최근에는 디지털 장비를 도입하는 업체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이는 품질은 기본이면서 동시에 생산성과 가격경쟁력이 근간이 되는 시대가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관수동은 원청보다 하청으로 이뤄지는 거래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가격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장비를 도입하려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기존 수작업으로는 할 수 없었던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장비를 도입하는 요인 중 하나인데 아직까지 관수동의 채널, 문자제작 업체 중 라우터나 레이저 장비를 도입한 업체는 몇 되지 않는다.
80년대 후반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 사회적인 이슈와 함께 사인산업의 파이가 커짐에 따라 1989년 관수동에 종합 사인업체를 설립해 17년간 운영하다가 지난해 레이저 장비를 도입 후 상호를 스타레이저로 변경해 채널, 문자제작 전문업체로 전향한 스타레이저 김수겸 대표는 “가격적인 부담도 있지만 장비를 비치할 장소가 협소하기 때문에 대다수 업체들이 라우터나 레이저 조각기 도입을 망설이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장비를 이용한 자동화 방식과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방식은 일부 차이점이 있지만 각 특장점이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한쪽으로 편승하는 일은 드물다. 관수동을 찾는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채널이나 문자제작은 대부분 주문생산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제작업체의 규모나 제작방식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관수동 채널제작 업체는 크기가 3m 이상인 대형 사인 분야에서는 그다지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매장 여건상 대형 장비를 구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량이 훨씬 많고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사인이나 인테리어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수십 년간 채널과 문자 제작만을 해온 전문가들이 응집해 있는 곳이 바로 관수동이고 채널제작과 관련해서 인터넷보다 발 빠른 정보가 오가는 지역이 바로 관수동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관수동은 사인과 관련한 모든 것들의 집결지이기 때문에 방문자들은 사전지식 없이도 다양하고 깊은 정보를 얻어갈 수 있다.

LED를 활용한 채널이 관수동을 밝힌다
다양한 주문물량이 쏟아지는 만큼 사인 제작과 관련한 경기와 트렌드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 비해 경기침체와 인력부족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 원자재 상승으로 대부분 사인 업체들이 공감하듯 수익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하지만 주문량은 꾸준하다는 전문이다.
상설 할인매장이 즐비한 거리가 계절별로 달라지는 쇼윈도 디스플레이로 옷을 갈아입듯 관수동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최신 트렌드를 향해 꾸준히 변화하고 있다. 채널사인 제작업체가 급속도로 늘어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각종 사인 제작과 관련한 주문이 들어오는 지역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반영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예원사인채널 김송겸 대표는 “최근에는 3D 입체조각과 내부광원을 LED로 활용한 채널사인, LED를 활용한 경관조명이 대세를 이루고 있으며 글자 따내기 작업은 자동화가 진행된 것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
토탈싸인대광 최정규 대표는 “부식을 활용한 사인은 공공기관의 안내, 경고 사인과 준공사인, 기계명판을 비롯해 상호명 등 기존 물량을 꾸준히 유지하는 편이지만 예전에 비해서 대리석, 스테인리스 스틸 부식상패 주문량은 크게 줄어든 편이다. 최근에는 크리스탈로 제작한 상패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1995년부터 관수동을 찾으며 생활간판 제작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한 고객은 “플렉스 간판과 실사출력은 직접 제작하지만 목재간판, 주물, 부식, 채널사인 등과 관련한 주문이 들어오면 관수동을 찾는다. 최신 트렌드에 맞게 꼼꼼히 물건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한 업체만 꾸준히 찾고 있으며 십 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화가 없는 전경이 관수동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퀵서비스로 제품을 찾는 대신 직접 방문을 해 수령하는 편인데 갈 때마다 참 변하지 않는 동네가 관수동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청계천 복원과 더불어 주변의 지가가 올라 최근에는 외식, 숙박업 등이 생겨나는 모습도 볼 수 있지만 십년 전에도, 이십년 전에도 그러했듯 앞으로 한동안 관수동이 사인업계에서 차지한 비중은 변치 않을 듯하다.

90년대 말 이후 실사연출 장비 대량 보급
지난 90년대 후반 이후 수작업에 의존하던 제작방식을 실사연출로 전환해 디지털 방식을 선도하고 있는 실사연출 업체에 대해 살펴보면 우선 순수하게 실사연출만 진행하는 업체와 배너게시대, 깃발 등과 함께 실사연출을 다루는 업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순수하게 실사연출만 진행하는 업체는 별다를게 없지만 배너와 깃발을 다루던 업체들은 원래 사업을 진행하다가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 실사연출 장비가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장비를 구입하고 사업분야를 넓힌 경우가 많다.
관수동 내 위치한 대부분 업체들이 원청보다는 하청으로 작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사연출업체들은 타 업체가 하청받은 물량 중 실사연출과 관련한 부분을 맡는 형식으로 작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관수동에서 경력이 20년 정도라면 오래된 축에 들지 못한다. 대부분 그 정도 구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80년대 후반 전후에 관수동에 들어온 업체가 상당히 많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개최를 준비하면서 경기는 호황이었고 관수동도 덩달아 최고 호조에 다다르고 있었다. 관수동 내 업체들이 다루고 있는 아이템들이 모두 행사와 관련한 것들이어서 엄청난 물량 러쉬가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월드앰비션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베너게시대와 배너, 현수막 등을 사업 아이템으로 다루고 있는 업체이지만 그 당시에는 실용신안등록을 마친 ‘감기지 않는 깃대’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지광남 대표는 “당시 통장을 살펴보면 억대 단위로 수금한 물량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사업이 잘됐었다. 현재는 물량은 많지만 단위가 많이 작아졌다. 경기가 안좋아지면서 덩달아 분위기가 안좋아진 것이다”라고 과거에 비해 관수동 경기가 좋지 않음을 설명했다.
실사연출 장비들은 대부분 90년대 후반 이후 보급이 늘어났다. 그리고 대다수 업체들이 초창기에 비해 현재는 장비 대수도 늘었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마진이 갈수록 줄고 있기 때문에 실사연출 서비스만으로는 운영이 어려워 연계할 수 있는 아이템들을 동시에 취급하고 있다. 지광남 대표는 “원래 주력도 배너와 관련한 것이지만 실사 쪽은 워낙 단가가 낮아서 그것만 보면 유지가 안된다. 장비 1대당 적어도 하루에 30~50만원 정도는 이익이 나야하는데 매출도 그 정도가 안되는 문제인 것이다”라고 어려움을 설명했다.
언제 어떤 주문이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관수동 내 실사연출업체들은 관련한 모든 출력물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대형 출력물보다 손이 많이 가는 자잘한 출력물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가깝긴 하지만 서울 충무로 일대에 많이 모여 있는 실사연출 업체들이 고급스런 출력물을 다룬다면 관수동 내 실사연출업체들은 서민형 출력물을 다룬다고 보면 된다. 내부나 외부를 가리지 않고 물량이 있으면 언제라도 출력이 가능하다.

최근 들어 트로피, 판촉물 전문업체들도 실사 장비 도입
상황변화에 따라 실사연출 업체들은 새로운 방법을 모색중이다. 하청만으로는 앞으로 더 어렵다는 생각으로 소비자와 직접 만날 수 있는 창구를 개발하는 작업이 그것으로 이를 위해 대외적인 홍보활동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으며 조만간 인터넷을 통한 판매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체질개선 작업들이다.
신흥종합휘장은 업체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휘장, 깃발, 깃대 등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업체인데 1954년 봉익동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해 1988년도 관수동으로 이전했다. 80년대 국가적인 대형행사가 많이 열리고 호황이었기 때문에 휘장업체가 모여있는 관수동이 메리트가 있다고 판단, 이전한 것이다.
선대부터 대를 이어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성구 대표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원래 관수동은 술집골목이었고 지금 관수동에 있는 업체들은 과거 봉익동에 몰려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예지동에 모여 있던 금은방들이 봉익동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사인 관련업체들이 지금 관수동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라고 초기 관수동이 형성될 때에 대해 설명했다.
신흥종합휘장은 1999년 실사연출 장비를 처음 도입하고 현재 총 4대를 운영하고 있는데 김성구 대표에 따르면 관수동 내에서 두 번째로 실사연출 장비를 도입한 업체라고 한다. 초기 실사연출 장비를 도입했을 때는 꽤 괜찮았다고 한다. 하얀 바탕에 문자만 넣어주는 현수막도 1㎡당 1만원이었으며 바탕색이 들어가는 현수막은 1㎡당 2만원씩 받았다고 한다. 김성구 대표는 “그때는 단가가 좋아서 현수막으로도 꽤 장사가 됐다. 500cc 잉크 한 병에 88,000원이었는데 그런 잉크를 사다가 쓰면서도 남는 장사를 했으니 꽤 좋았던 것이 사실이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최근 등장한 새로운 트렌드는 깃발, 현수막 분야 이외에도 휘장, 트로피 업체들도 실사연출기를 도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고객층이 비슷하기 때문에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외주로 처리하던 작업을 직접 소화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물론 전문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주문량이 많거나 디자인이 복잡할 경우에는 주변에 있는 실사연출 전문업체에 맡기기도 한다.
한 트로피 전문업체 관개자는 “휘장, 트로피, 판촉물 업체에서 실사연출기를 도입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대다수 업체들이 수익성 개선을 위해 투자금액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고 매장 내에도 공간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에 실사현수막 제작을 위해 수성 장비를 도입하고 있다. 주변에 있는 실사연출 전문업체들에게 운영방법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 물량을 공유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SignMun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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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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