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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MD 전문가 이랑주의 ‘사인 여행기’6 페루, 잉카 제국의 수도 쿠스코
글 이석민 2013-12-01 |   지면 발행 ( 2013년 12월호 - 전체 보기 )

 트랜드와 디자인-특별화보

키워드 : 페루, 이랑주, 사인

VMD 전문가 이랑주의 '사인 여행기'

본지는 7월호부터 12월호까지 6회에 걸쳐 남미와 동유럽 국가들의 거리 디자인과 간판·사인에 대해 알아봅니다. 미국 및 서유럽의 선진국들과는 다소 차별되는 디자인 특성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필자는 VMD연구소 이랑주 대표입니다.

*필자의 원고는 <월간 사인문화>의 편집방향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글·사진 이랑주

lmy730@hanmail.net

이랑주 VMD연구소 대표, 저서 '이랑주의 마음을 팝니다'

VMD 전문가 이랑주의 '사인 여행기'6

페루,

잉카 제국의 수도 쿠스코





마이애미에서 비행기를 타고 남미 여행의 첫 관문인 페루 리마에 도착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으로 쉽사리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소매치기와 강도사건이 연일 여행객들 사이에 오고가고 버스 추락사고로 수 십 명이 사망한 소식이 TV를 통해서 흘러나온다. 그럼에도 남미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남미 최대의 제국, 잉카 제국의 수도인 페루 쿠스코를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바로 그렇게 꿈꾸던 잉카 제국의 수도로 가는 길은 고산병으로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페루의 수도 리마다. 돌을 다루는 데 있어 세계최고의 솜씨를 자랑하는 잉카의 후예답게 거리는 남미의 어느 도시 보다 깨끗하고 상점들은 잘 가꾸어져 있다. 아르마스 광장으로 가기 위해 라우니온 거리를 걷는다. 그런데 특이한 것이 던킨도너츠의 간판이 검정색으로 되어 있다. 빨간색으로 잘 알려진 KFC 간판조차도 검정색으로 되어 있다. 놀라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리마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콜로니얼 도시로 주변 경관을 해치는 화려한 간판을 금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스타벅스도 초록색이 아닌 짙은 노란색과 검정색으로 되어 있다.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 간판 색 조차도 섬세하게 조율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자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과 깊은 애정을 엿 볼 수 있었다.

거리의 상점들 또한 화려하거나 자극적인 간판들 보다 주변과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색상으로 자신의 상점들을 알리고 있었다. 거리를 빠져나오니 리마의 중심인 아르마스 광장에 도착했다. 아르마스 광장에는 남미와 스페인 풍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들이 마치 전시회를 하듯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광장을 중심으로 둥글게 자리를 잡고 있다. 광장 중앙에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조형물들로 가득 메워진 대성당이 흰 빛을 발하고 있다. 대성당의 좌측에는 대통령궁이 자리 잡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매일 정오에 펼쳐지는 근위대 교대식을 보기 위해서이다.

아르마스 광장과 산마르틴 광장을 잇는 센트로의 메인 스트리트인 라우니온 거리를 걸으며 하나의 독특한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많은 건물들과 간판, 사인들이 노란색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노란색이 많이 보일까? 혼자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마 잉카가 황금의 제국이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1553년, 스페인 용병 출신의

상인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잉카 제국을 침략했을 때 황제 아타우알파를 볼모로 잡은 피사로는 그의 몸값으로 큰 방을 가득 채우는 황금을 요구했다.

가로 6.7m, 세로 5.2m, 높이 2.6m의 방을

황금 6,087kg, 11,793kg으로 채웠음에도 결국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는 처형당했다. 그렇게 많은 황금을 가지고 있었던 황금의 제국은 막을 내렸지만 찬란했던 황금시대의 유산은 거리 곳곳에 색상으로 아직 남아 있는 듯하다.





쿠스코

리마에서의 일정을 뒤로 하고 쿠스코로 가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터미널도 노란색으로 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리마 공항의 기둥과 사인들도 노란색으로 되어 있었다. 페루의 현재를 뒤로 하고 찬란했던 황금제국의 수도 쿠스코로 향했다.

떠나기 전 소루체라는 고산병 예방약을 구입해서 먹었다. 20시간을 이상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심장은 찢어 질 듯이 아팠고, 호흡하기 힘들어서

몇 번이고 깨어서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심호흡을 해야만 했다. 뒷자리에 앉은 아주머니는 산소 호흡기를 달라며 밤새 울부짖었다.

그렇게 24시간을 달려 고도 3,399m 쿠스코에 도착했다. 희박한 공기로 버스에 내려서 거북이처럼 느린 걸음으로 움직였다. 푸른 물감을 휙 뿌려놓은 듯 거칠 것 없이 새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 왔다. 구름은 손을 뻗으면 잡힐 듯 낮게 내려앉았다. 구름 너머에는 안데스 산맥의 능선들이 아름답게 빛난다. 이곳이 바로 고대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다.

리마에도 중심광장이 아르마스였는데 이 곳 또한 아르마스 광장이다. 광장에 들어선 순간 나의 눈은 새파란 하늘 아래 빛나는 성당과 유럽의 그 어느 도시보다 잘 가꾸어진 석조건물들의 반짝임에 심장이 쿵쿵거리고 발바닥이 간질거렸다. 잉카제국의 기반 위에 스페인식 건축물이 세워진 광장은 그 어떤 도시의 광장보다 아름다웠다. 성당을 비롯한 건축물은 붉은 벽돌로 되어 있고 광장의 중앙에 있는 분수와 사인, 가로등은 모두 초록색으로 되어있다. 붉은 건물과 초록색 사인들이 조화롭게 서로를 보듬어주며 광장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었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트리운포 거리를 따라 동쪽으로 가면 아툰 루미요크 거리가 나온다. 이곳에는 잉카인들의 석조기술의 백미로 꼽히는 12각의 돌을 볼 수 있다. 석벽으로 둘러싸인 이 거리에는 종이 한 장 끼울 수 없이 정교하다. 골목에 들어서면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많은 사람들 덕분에 쉽게 찾을 수 있다. 하나하나 각을 세어보니 정말로 12각이다. 그냥 사각으로 돌을 잘라 넣으면 될 것을 일부러 12각의 복잡함에 도전하는 잉카인들의 미의식에 그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돌을 다루는 데 있어 세계최고라는 칭송을 받을 만하다.

반짝이는 돌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골목에 발을 들여 놓으면 그 아름다움에 그저 가슴이 먹먹해 진다. 각이 살아있는 돌담 위에 지어진 아담한 건물에는 눈에 들어 올 듯 말 듯 작고 아름다운 사인들이 처음부터 하나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자연의 균형을 깨트리지 않고 조화롭게 어울리는 사인을 보면서 '착한 사인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 잘 났다고 더 크게 더 화려하게 만들지 않고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위해 내려놓고 조화를 먼저 생각하는 잉카인들의 미의식은 아직까지 그들의 골목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발길을 따라 어느 골목에 들어가도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남들보다 더 많이 벌기위해서 좀 더 튀어 보이거나 불필요하게 화려하기 보다는 같이 먹고 살자는 소박한 마음이 그들의 사인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어쩌면 사인은 그 도시 사람들의 삶을 닮았는지도 모른다. 한 상점의 사인은 그 주인의 성향을 닮았고, 한 도시의 사인은 그 도시의 삶을 닮았다. 세계의 모든 다국적 기업의 사인들이 모여 있는 미국 타임스퀘어 광장의 사인은 더 이상 화려 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더 이상 클 수 없을 만큼 크다. 현대인들은 충분히 많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이 가지려 하고, 충분히 높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더 높이 오르려고 한다. 현대인들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끝을 사인들이 대변하듯 밤새 요란스럽게 빛난다. 대도시의 사인들은 도시인의 삶처럼 피곤해 보인다. 본질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며, 남들의 보는 시선의 긴장하고 상기되어 있는 현대인들처럼 말이다.

남미 여행을 하면서 문화유산과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고 조화로운 사인들을 보면서 가끔은 즐거웠다.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조화로운 사인들을 보면 순식간에 마음에 꽃이 피어난다. 입술에는 미소가 번진다. 미국과 유럽의 대도시의 사인과 남미의 사인은 참으로 다르다. 물론 물질적으로 풍요한 나라의 사인들은 그 도시의 부의 척도만큼 화려하고 번듯하다. 예술의 도시답게 유럽은 아름답고 정고하며 센스가 넘친다. 남미는 그들 보다 가난하다. 풍부하지 않는 자금적인 문제를 그들은 벽화나 재활용, 아이디어로 승부하고 있다.

연재를 마치며

쿠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 세르비아의 사인들을 둘러보면서 유럽과 미국 스타일의 사인에 익숙해진 나의 눈에는 참으로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 일주를 마치고 한국의 도시를 걸으며 나는 우리의 사인들은 유럽과 미국의 모방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에 대기업에서 개점한 페밀리 레스토랑에 들르게 되었다. 입구 사인에서부터 내부 장식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여행하면서 봤던 영국의 한 레스토랑과 유럽의 어떤 식품점을 절묘하게 섞어 놓은 것 이었다. 모방하려고 해서 의도적으로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우리가 미국과 유럽에서 너무 많은 사인을 보아 왔기 때문에 우리의 뇌 속에서 그들의 것은 좋은 것, 멋진 것으로 각인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다른 디자인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들과 다른 어떤 문화는 촌스럽고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나 또한 세계 일주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우와~ 대단하다고 연발을 했을 것이다. 더 좋은 사인을 만드는 일은 우리 보다 더 좋은 곳에 가서 보고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정 반대에서 찾아 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6회에 걸친 중남미 연재는 다소 촌스러웠을 수도 있고, 볼거리가 없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낯설음 속에서 새로운 보석을 찾아낸 독자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도시의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사인은 무엇일까?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는 사인의 세 가지 덕목은 최초이거나, 유일하거나, 압도적이어야 할 것이다. 모방에서는 그런 감동과 압도적인 아름다움은 나오지 않는다. 더 낮은 곳에서 혹은 지구의 반대편에서 느낄 수 있는 낯설음 속에서 찾아 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깊은 감동의 울림으로 새겨진 사인은 그 누군가의 가슴 속에 평생 남아 있을 것이다. 쿠스코에서 보았던 자연과 하나 된 조화로운 사인은 나의 가슴에 깊은 각인이 되어 아직까지 먹먹한 감동을 준다.

화려하고 큰 사인들이 더 큰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조화로움이야말로 가장 큰 감동이다.

그런 감동적인 사인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분명히 존재 할 것이고, 사인문화를 읽는 독자들이 만들어 낼 것이라고 믿는다. 사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없는 비주얼 머천다이저 입장에서 써내려간 사인 기행문은 부족함이 많은 글이었을 인정한다. 하지만, 6회에 걸친 남미 사인기행을 마치며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의 삶을 닮은 사인들을 보면서 나는 행복했고, 그 행복함을 이 기행문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전해졌기를 바래본다. 쫖





1 화려한 색상을 입은 거리의 건축물.

우리나라와 같은 무질서한 간판은

보이지 않는다. 건물과 조화를 이루는

돌출 및 조각 사인이 이채롭다.

2 거리의 옷가게.

3  잡화점.

4  각기 다른 홍보물을 부착한 버스 광고물들.

5 현대적인 조각사인.

6 마네킹을 행잉하여 시선을 끄는 청바지 가게.

7  식품매장내 사인들.

8  지하철 안내 사인물.

9  리마의 거리는 깨끗하다. 복잡한 사인물이나 광고물이 눈에 띄지 않는다. 시각적 밀도가 매우 낮다.

10  쿠스코의 유명한 산 페드로 시장 사인.

11 마추피추로 가는 안내사인.

12 거리를 안내하는 사인물.

13  기념품 매장 입구의 나무 조각 인형이 눈길을 끈다.

14  옷감을 판매하는 가게.

15  코스코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알림 사인.

16  우리나와와는 확연히 다른 사인 문화.

단순하고, 크기가 작다. 입간판도 보이지 않는다.

17  남미 특유의 유럽형 거리. 이곳 역시 간판이 작고 소극적이다.

이 때문에 거리가 청결해 보인다.

18  성당 벽면의 소박한 사인.

<SignMunhwa>

위 기사와 이미지의 무단전제를 금지합니다. 

관련 태그 : 페루 이랑주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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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트렌드+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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