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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할 지至 어려울 난 難
2009-12-01 |   지면 발행 ( 2009년 12월호 - 전체 보기 )

  지극할 지至 어려울 난 難

독자들의 이야기  지난한
  지난날,
  그 파란만장


사인시장이 얼어붙었다. 각종 장비 판매, 사인 물량 감소, 극심한 가격경쟁 등으로
많은 업체들이 애로를 겪고 있다. 하지만 ‘위기’의 또 다른 말이자 동의어가 바로 ‘기회’다.
창간 14주년을 맞아 본지는 힘든 위기의 순간과 이를 기회로 바꾼 독자들의 진솔하고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을 들어본다. 이와 함께 창간 14주년을 맞이한 본지에 대한 의견도 동시에 청취한다.  글·구성_편집부

1. 기획서 잘 쓰는 요령만 알아도 돈이 보인다. 내년엔 《사인문화》에서 그런 것 좀 볼 수 없으려나? - 광고매체사에서 일하는 한 독자

2. 불균형한 발전은 좋지 않다. 현재 지방은 서울에서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낙후되어 있다. 지방의 사인업계에도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쏟아달라. 서울, 경기 등 수도권보다 오히려 지방에서 《사인문화》의 파워가 훨씬 세다는 것을 아는가.
작은 관심도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 충북 제천시 ○○광고기획 김모씨


3. 맛있는 집이 장사가 잘되는 것이 아니라 장사 잘되는 집이 맛있는 거지. 왜냐면 재료의 소비회전이 빨라 그만큼 신선하니까. 신제품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이 건장하고 장사가 잘되고 있다는 말씀. 신제품을 더 보여달라! - 10년 넘게 구독하고 있는 마니아

4. 소비를 일으키는 마술. 제품 제조업체의 백 마디 말보다 사용자의 한 마디 의견이 소비를 움직입니다. 《사인문화》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그리고 재미있는 가십거리도 공존했으면 합니다. 유머러스한 사람이 대세인건 아시죠? - 경기도에서 일하는 채널공장 공장장

5. 트렌드를 선도하는 자와 그것을 따르는 자가 시장에는 공존합니다. 어떤 모델이 정답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이왕이면 트렌드를 만드는 쪽이 대중들에게 후한 평가를 받겠지요. 계속해서 옥외광고의 트렌드를 만들어 주시길. - 간접적이나마 사인산업 발전을 위해 고민중인 사람

6. 디자인이 좋은 간판 사례를 많이 보는 편인데 조금 더 전문적으로 분석해주면 좋겠다. 어떤 이유로 좋은 간판이라고 하는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제작해야 하는지 등 자세한 부연설명은
실제 작업시 많은 도움이 된다. - 볼 때마다 더 많은 갈증을 느끼는 애독자


7.《사인문화》는 사인업계 종사자들에게 유용한 참고서가 돼야 한다. 몇 십 년 경력이 있는 베테랑 뿐 아니라 이제 막 사인업계에 입문한 초보자들도 쉽게 볼 수 있도록 쉬운 용어를 사용하고, 강좌도 연재했으면 좋겠다. - 서울시 중구의 사인업계 초보자가

8. 인터넷 홈페이지에 제품후기를 쓰는 것처럼 신제품 기사에 별점제를 도입해 공정한 평가를 해보자.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된 제품을 소개함으로써 제품과 잡지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다. -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는 독자

9. 사인 제작업체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제작방법에 대해 관심이 많다. 사인업체끼리도 서로 제작이나 시공방법을 문의하기도 한다. 따라서 새로운 제작기술이나 시공방법을 담은 기사를 실어 현장 작업자들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 현장작업 때마다 애를 먹는 일당기사

10. 사인업계 초창기에는 인터넷 세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인터넷을 많이 어려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들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을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활성화시켜 업계 종사자들의 커뮤니케이션 공간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 강원도 춘천 토박이 디자이너

11. 사인에서만 아이디어를 찾기엔 한계가 있다. 사인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더라도 다양한 분야의 기술과 팁에 대해서도 다뤄줬으면 좋겠다. 분명히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참고할만한 사항이 있을 것이다. - 서울 성동구 ○○광고 팀장

12. 현재 법 제도로는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 왜 불법을 저지르는지에 대한 이유 등 광고인들이 말할 수 없는 부분들을 언론에서 다뤄줘야 한다. 아울러 대형업체 뿐 아니라 소규모 업체들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언론사가 됐으면 좋겠다. - 전남 순창에서 고추장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인 제작자

13. 금쪽같은 좋은 자료들이 많다. 해외자료나 각종 법령모음, 다양한 사례 등을 모아 다양한 단행본을 출간해 작업 시 편리하게 들춰볼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 - 서울 동작구 간판집 아저씨가~

14. 크리에이티브가 너무나 그립다. 보고 싶은 그대는 바로 크리에이티브! 내게 기발한 아이디어가 담긴 사례를 보여줘. - 클라이언트의 어정쩡한 요구 들어주느라 밤 새우는 광고회사 직원

15. 다양한 사인업계들의 소식과 상황을 제일 가까이에서 접하는 잡지이니만큼 현실 가능성 있고 업계의 발전을 이끌 수 있는 각종 가이드라인을 먼저 만들어 정부기관이나 지자체 등에 제시하는 등 직접적인 역량을 보여달라. - 부산 동래구 ○○기획 사장

16. 함께 모여야 힘을 낼 수 있다. 진정으로 사인업계에 힘이 될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하다. 《사인문화》가 앞장서서 제대로 된 단체를 만들어 달라. 많은 이들이 적극 동참할 것이다. - 경기 수원시에서 열혈독자

독자들이 말하는 이런 말, 저런 말

참 많은 독자분들이 《사인문화》 14주년을 맞아 좋은 의견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지면을 빌어 의견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2010년 새해에는 여러분의 의견을 저희 《사인문화》에 담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만루홈런 맞은 후
반격 시작

이재선 | 뉴미디어파트너스 이사
  _옥외매체 / 13년 경력

만루홈런 맞은 후 반격을 준비하는
새로운 이닝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는데
대략 2할 5푼 정도로 보고 있다.
이정도면 방출당할 수준은 아니지 않는가?
물론 3할을 쳐야 역전을 할 수 있겠지만
일단은 동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9회말까지는 아직 멀었다.

9년이 넘는 기간을 일했던 회사에 부도가 오니 마치 만루홈런 맞고 멍하니 서있는 투수의 느낌이랄까. 작년 그린미디어 부도이야기다. 이 업계에 종사하면서 가장 큰 위기가 아니었다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한동안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지만 뭔가 하지 않으면 정말 안되겠다 싶어서 타스TV 판매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다.
그린미디어 부도 후 사무실 이전만 3번째다. 이번에는 오래가야지 오래가야지 하면서도 그것이 참 쉽지 않다. 물론 그것이 안 좋은 이유 때문에 바뀐 것은 아니지만 한 곳에 정착한다는 것이 중요하긴 하다. 그래서 올해 중반부터 시작한 타스TV 영업부터 현재는 핑거터치 광고 영업까지 다양한 아이템으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는 솔직히 부도 후 땅을 다지는 시기였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상황을 만루홈런 맞은 후 반격을 준비하는 새로운 이닝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는데 대략 2할 5푼 정도로 보고 있다. 이정도면 방출당할 수준은 아니지 않는가? 물론 3할을 쳐야 역전을 할 수 있겠지만 일단은 동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9회말까지는 아직 멀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셋방살이에 눈치만 느는 것처럼 어려움을 겪으면서 나를 낮추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린미디어 시절에는 조직시스템도 이사라는 위치 때문에 굵직굵직한 사안만 직접 컨트롤 했는데 이제는 모든 것을 컨트롤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겸손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린미디어 시절에 건방지게 행동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겸손해 진다는 의미는 가끔 뒤를 돌아보는 여유라고 할 수도 있겠다. 몸은 바빠졌지만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는 그런 느낌 말이다.

입바른 소리 했다가
거의 귀향수준의 인사이동

한민호 | 문화관광부 공간문화과 과장
  _공무원 / 16년 경력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많은
아이디어와 기획이 사장됐던 적이
참 아쉬웠다. 그 후에 성과전략팀에서
일할 때 시스템의 부재를 탓하는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거의 귀향수준의
인사이동이 있었다. 진짜 위기는
아마도 그때가 아니었나 싶다.

1993년 행정고시 합격 이후부터 공직 생활을 시작했으니 올해가 16년째다. 공무원생활에 무슨 파도가 있겠냐고 물을 혹자들도 있겠지만 알게 모르게 존재한다. 그리고 그 파도가 때로는 자신의 과실이 아닌 외적인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그런 부분에서 가끔 어려움을 느낀다.
특히 2005년에 광복60주년 기념 사업단에서 일했는데 당시에 의미 있는 행사를 준비해 보고자 학계를 시작으로 시민단체까지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청취해서 준비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많은 아이디어와 기획이 사장됐던 적이 위기라기보다 참 아쉬웠다. 그 후에 성과전략팀에서 일할 때 시스템의 부재를 탓하는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거의 귀향수준의 인사이동이 있었다. 진짜 위기는 아마도 그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2007년부터 공간문화과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굉장히 좋다. 팀원들의 상호간 신뢰수준도 상당히 높고 팀워크도 좋고. 공공디자인관련 사업을 팀 차원에서 의욕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아직은 초장기기 때문에 정부부처인 우리가 주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공공디자인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일상적으로 실천할 때 의미가 있고 맞는 것이다. 즉 일상적으로 자신의 공간을 소소하게 꾸미는 행위 자체가 공공디자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러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때 까지는 정부 등 특정단체가 이끌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변을 확대하는 것인데 그런 작업을 현재 공간문화과가 하는 것이라 보면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공공디자인 일상적으로 대다수 국민이 누릴 수 있게 된다면 그날이 바로 공간문화과가 해체되는 날이다. 더 이상 할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위해서 현재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고... 그리고 조금만 욕심을 부리자면 앞으로 몇 년 더 이곳에서 일하면서 공간문화과 해체를 가속화 시키며 미련 없이 떠나는 것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반토막 나버린 광고는
펀드보다 더 무섭지

안광현 | 이노션월드와이드 대리
  _광고회사 / 7년 경력

하천 둔치 공원에 농구코트를 설치하는
대형 프로모션을 기획한 적이 있는데
설치한 다음날 해당 구청에서 전화가
오더라. 철거해야 한다고. 아직 광고주한테 완료보고도 못 한 시점이었는데 진짜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냥두면 정말
난리 나겠다 싶어서 일단 광고주에게
상황설명을 하고 무작정 달려갔다.

대략 몇 해 전부터 유례없는 펀드 열기에 너도나도 가입했다가 반토막 나고 울상을 짓는 사람 여러 명 봤다. 물론 그것도 참 무서운 일이지만 나처럼 광고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가 반토막 날 때다. 특히 제작비가 두둑히 들어간 프로모션일수록 더욱 그렇고 그럴 때마다 거의 아노미 상태에 빠진다.
예전에 나이키 광고를 길거리 농구 컵셉트로 부산에 진행할 때였다. 하천 둔치 공원에 농구코트를 설치하는 대형 프로모션이었는데 설치한 다음날 해당 구청에서 전화가 오더라. 철거해야한다고. 아직 광고주한테 완료보고도 못 한 시점이었는데 진짜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냥두면 정말 난리 나겠다 싶어서 일단 광고주에게 상황설명을 하고 무작정 부산으로 내려갔다. 해당 구청 담당자에게 설명했지만 복지부동이었고 결국 될 때까지 한번 버텨 보기로 마음먹고 철거에 응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물론 가만히 앉아서 버틴 것은 아니다. 광고주와 담당공무원 사이를 오가며 계속 조율했다. 결국 보름이되는 시점에 광고를 내렸고 한달 기획의 프로모션은 처참하게 반토막났다. 아마도 그때가 이일을 하면서 가장 식은땀 났던 순간이 아니었다 싶다.
광고계통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자신이 기획한 프로모션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 보람을 느끼고 재밌어한다. 특히 OOH미디어 특성상 눈에 띄는 결과물이 보이기 때문에 그러한 기쁨은 더 크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아직도 광고주가 OOH미디어를 4대 매체를 보조하는 수단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물론 상호간에 유기적인 공조를 통해서 효과를 극대화 시킨다면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대부분은 그렇기 못하다. 그런 면에서는 광고 전체적인 결과물을 놓고 가치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만을 두고 평가하는 기준도 생겼으면 좋겠다. 굳이 말하자면 아이디어 페이 정도...

IMF 칼바람
OOH미디어 분야에는 기회

박현 | HS애드 OOH기획팀 부장
  _광고회사 / 14년 경력

IMF 터지면서 입사동기들 중에
3분의 2가 떨어져 나갔다. 워낙 칼바람이
불던 때라 남을 챙겨주고 그럴 여유조차
없는 시절이었다. 주량이 아마 그때
급격히 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이
그러한 칼바람이 OOH미디어 분야에는
기회였다. 수치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의 기준이 재정립된 것이다.

14주년이라니 일단 축하한다. 묘연인지 기연인지 나도 이 업계에서 일을 한지 14년이 됐으니 의미 있는 인터뷰라 할 수 있겠다. 특별히 위기라고 할 것이 있나? 하루하루가 위기의 연속이지. 그래도 뭐 큰 위기는 뭐니뭐니해도 IMF때가 아니었나 싶다. 솔직히 IMF 이전에는 대기업에서 일하다는 것은 거의 준 공무원 수준의 평생직장과 다름없는 의미였다. 실제로도 그랬고 하지만 IMF가 터지면서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거다. 좋게 말하면 노동시장의 유연화랄까?
IMF 터지면서 입사동기들 중에 3분의 2가 떨어져 나갔다. 워낙 칼바람이 불던 때라 남을 챙겨주고 그럴 여유조차 없는 시절이었다. 주량이 아마 그때 급격히 늘었지 아마(웃음).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이 그러한 칼바람이 OOH미디어 분야에는 기회였다. 수치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의 기준이 재정립된 것이다. 다시 말해 소요되는 비용대비 효과를 막연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화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에는 디지털 사이니지 쪽을 흥미롭게 보고 있는데 미디어 환경이 디지털과 맞물리면서 재미있는 사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물론 내년, 내후년 이면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옥외라는 개념은 아마도 해체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몰락이 아니라 발전적 해체라고 보면 되는데 ‘옥외+온라인’, 이런 식으로 상호간의 경계를 허무는 융합, 즉 컨버전스 미디어 개념이 올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점점 가속화된다면 콘텐츠가 화두로 떠오를 것이고 그것을 다루는 집단이 큰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드웨어는 한 철 장사지만 소프트웨어, 콘텐츠는 한 번 만들면 두고두고 팔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변화를 업계종사자들이 감지하고 학습을 할 필요도 있는거고.

파란만장
채널 만들기 대작전

오일곤 | 애드컬러ㆍ채널팩토리 대표
  _실사, 채널 / 4년 경력

플렉스 간판과 실사이미지 출력의
강력규제라는 비보. 모든 인생과 자금을
올인해서 만든 회사를 이대로 무너지게
만들 수는 없다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시청 관계자들부터 시작해 국장까지
직접 만나는 등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실사업계의 살아갈 길을 모색했지만
역부족이었다.

2007년 8월, 실사 업계 입문 2년만에 애드컬러 창업. 2008년 3월, 뛰어난 색채감각을 바탕으로 한 출중한 능력으로 전주권 실사출력 업계의 블루칩으로 단박에 등극. 사인문화의 업체인터뷰에도 소개되며 막강한 물량 소화력과 고품질의 결과물로 이름을 널리 날렸다. 아무튼 엄청나게 잘나갔단 얘기. 2008년 12월, 여전히 승승장구를 거듭하며 전주 사인업계의 참새방앗간으로도 활약.
그런데 갑작스런 시청의 호출로 200여 개의 광고업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곳에서 들은 것은 플렉스 간판과 실사이미지 출력의 강력규제라는 비보. 모든 인생과 자금을 올인해서 만든 회사를 이대로 무너지게 만들 수는 없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쥔 오 대표는 시청 관계자들부터 시작해 국장까지 직접 만나는 등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실사업계의 살아갈 길을 모색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채널사인으로의 전환을 권장하던 시청의 권고를 받아들이고 기술보증기금의 자금융자 도움을 받아 채널제작 공장설립에 착수했다.
2009년 6월, 공장과 각종 기계설비 완료. 하지만 전주에는 채널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오 대표와 생 초짜 직원들의 고생이 시작됐다. 6개월 동안 오픈식을 미룬 채 채널 만들기 대작전에 돌입, 수많은 시행착오와 테스트를 거쳐 피눈물 나는 수련을 거듭했다. 정말 무모한 짓이었다고 회고하는 반년의 시간동안 오 대표는 상당량의 자금과 시간을 잃었지만 대신에 믿음과 실력, 그리고 경쟁력을 얻었다.
2009년 11월, 드디어 안팎으로 완벽하게 세팅된 채널팩토리 오픈. 전주 시내에는 채널을 소화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는지라 기대감이 크다. 거기다 실사업계 시절에도 그 완벽함으로 유명세를 날렸던 터라 또 한 번의 푸른 폭풍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되는데, 물론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하지만 조만간 분명히 그들의 노고를 보답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감히 확신하며 건투를 빌어본다. 진심으로 파이팅!!!

시민운동은 끼니와 같은 것,
힘들어도 거르지 않는

최범 | 희망제작소 부설 간판문화연구소 소장
  _시민운동단체 / 9년 경력

시민운동은 처음 설정한 의제가 실현된
후에 끝나는 것이지 중간에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온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업이나 정치라면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손을 놓을 수 있지만 시민운동은 그렇지
않다. 마치 아무리 사는 것이 힘들어도
끼니는 거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2000년에 예술의전당에서 ‘간판을 보다’라는 전시회를 개최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분야로 들어오게 된 계기였다. 당시에는 그저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간판을 바라본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묘연이자 기연이었던 것 같다. 그 후에 간판문화개선이라는 의제를 가지고 시민운동을 많은 일을 겪었고 지금도 계속 진행중이다.
위기라면 지난날보다 현재라고 볼 수 있는데. 뉴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듯 희망제작소의 수장인 박원순 변호사가 현 정부와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라 영향이 적잖이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당장 이 조직을 주저앉히려는 탄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어려움이 따른다.
그렇다고 해서 희망제작소와 간판문화연구소가 진행하는 시민운동을 멈춰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시민운동은 처음 설정한 의제가 실현된 후에 끝나는 것이지 중간에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온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업이나 정치라면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손을 놓을 수 있지만 시민운동은 그렇지 않다. 마치 아무리 사는 것이 힘들어도 끼니는 거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2007년부터 간판문화연구소에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제 방향성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정칙적인 위기에 처했다고 그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것 아닌가? 만약 내일 당장이라도 대한민국의 간판문화가 대다수 사람들이 공감하는 방향으로 바뀐다면 끝내고 새로운 의제를 설정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기 때문에 이 시민운동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3년을 활동하면서 이제야 비어있는 부분이 조금씩 차오르는 서서히 변화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데 어찌 이것을 포기 하겠는가?

사정 어려운 고객의 가게,
입소문 내줘

정항석 | 생각하는채널 실장
  _채널사인  / 14년 경력

장애인인 엄마와 딸이 분식집을 오픈했는데, 마지막으로 간판 값만 마련하지 못했다.
200만원 정도 하는 간판을 제작하고 6개월
동안 돈 한 푼 받지 못했다. 우리도 돈을
받아야 운영이 가능하지만 나중에 돈 벌면
달라고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그 분식집이
맛있다고 소개를 해줬다. 그렇게 해서
6개월 후에 절반을 받을 수 있었다.

요리를 잘 하기는 해도 잘 알지는 못해서 요리로 업을 삼을 순 없다는 정항석 실장은 잘 할 수 있고, 또 잘 알고 있는 사인업계에 어언 14년이라는 세월동안 몸담고 있다. 현재는 채널자재 유통업체에 몸담고 있지만 정 실장도 처음엔 간판 제작업을 했었다.
“간판 제작업은 사람 냄새나는 참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다. 여러 다양한 점포주들을 직접 만나 친근감과 유대관계를 쌓을 수도 있다. 그럴 때면 이 일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1998년도 즈음인 것 같다. 장애인인 엄마와 딸이 분식집을 오픈했는데, 마지막으로 간판 값만 마련하지 못했다. 200만원 정도 하는 간판을 제작하고 6개월 동안 돈 한 푼 받지 못했다. 우리도 돈을 받아야 운영이 가능하지만 나중에 돈 벌면 달라고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그 분식집이 맛있다고 소개를 해줬다. 그렇게 해서 6개월 후에 절반을 받을 수 있었다”며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은 점포주들이 아닌 중간 관계자들을 만나니까 예전처럼 사람 냄새나는 인간관계가 형성되지는 않는다. 품질, 가격, 납기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친근감 있는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한편, 그는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를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 개발로 헤쳐 나가야 한다며 자신의 위기를 인정하고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위기를 인정하고 본인의 역량을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선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파악해서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앉아서 신세한탄만 하고 있으면 발전이 없다”고 말하며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따끔한 충고가 될 조언을 했다.

퇴짜놨던 사장님 2주 만에
장비 다시 달라는데 짜릿

신동신 | DS시스템 대표
  _실사 / 6년 경력

거래처 사장님한테 전화가 오더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 지 2주만이었다. 지금 물량이 너무 많아서 그러는데
장비를 구입하겠다고 빨리 보내달라고
말이다. 겉으로는 지금 재고가 없어서
시간지 조금 걸린다고 약간의 거드름을
떨었지만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한 순간이었다.

2003년부터 실사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몇 년 전부터는 하도 위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서 그런지 어느 정도로 떨어져야 위기인지에 대한 감이 없을 정도다. 나쁘게 말하면 위기의 연속인거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뭐하나 싶어서 위기에 담대해지는 면역주사를 맞는다는 생각으로 긍적적으로 살려고한다.
저 단가 경쟁과 규제일변도로 흐르는 정책이 만나서 정말 살인적인 위기가 도래했다고는 하지만 결국 살아남을 사람들은 살더라. 방법론의 차이인 것 같다. 위기라고 힘들다는 볼멘소리를 해도 버티는 업체를 보면 결국 뚜렷한 영업철학이 있다. 단순히 장비 판매에 목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해서 소모품 등 사후 비용을 많이 발생하게 하는 방법론을 알고 있는 업체는 위기에도 끄떡 없더라.
특히 본격적인 하향세를 타기 시작한 2007년부터는 그러한 방법론을 알고 모르고가 정말 성패를 좌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생존에 도움이 되는 엄청난 무기였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시점이 아마도 DS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해서 장비를 개발에 착수한 시점과 엇비슷했을 것이다.
이 일이 참 즐겁고 행복할 때는 딱 하나다. 내손으로 개발한 장비가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 현수막 재단기 덱스터를 처음 개발하고 충무로 몇 몇 출력소 데모타입으로 돌렸을 때 처음에는 시큰둥했다. 그냥 수작업 하면 되는 것을 장비에 투자할 필요가 있느냐는 식의 반응이었다. 어떤 사장님은 장비를 가져가라 해서 수거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2주 후에 그 사장님한테 전화가 오더라. 지금 물량이 너무 많아서 그러는데 장비를 구입하겠다고 빨리 보내달라고 말이다. 겉으로는 지금 재고가 없어서 시간지 조금 걸린다고 약간의 거드름을 떨었지만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한 순간이었다.

뭘 하든 예뻐야지, 실사업계도
좀 더 세련되질 필요가 있어

허정일 | 삼우디자인 대표
  _실사 / 23년 경력

실크스크린 방식에 비하면 표현의 한계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장비와 기술이
발달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콘텐츠를 생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분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과거 암흑기에 국가 권력에 기대지 않았더라면 현재와 같은 현상은 아니었을 것이라 보는데 그것이 아쉽다.

실사업계에 입문한 지는 23년 됐는데 생각해보니 암흑기가 참 호황이었다. 5공 시절에는 진짜로 길거리에 하루가 멀다 하고 현수막이 붙었다. 국가권력이 정권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현수막을 많이 활용했기 때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해외순방 나가면 그 내용의 현수막이 길거리를 뒤덮었고 귀국하면 또 현수막 내용이 바뀌어 뒤덮이는 식이었으니까.
호황이었지만 그것이 길게 못간 이유는 권력에 몸을 대고 있었고 그 정권 몰락과 함께 했다는 것도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철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출력을 함에 있어 무엇을 대중에게 보여줘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디자인 인식 부재와 연결됐고 장비가 디지털로 진화했지만 시장은 되레 축소되는 아이러니가 연출됐다.
과거 실크스크린 방식에 비하면 표현의 한계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장비와 기술이 발달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콘텐츠를 생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분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과거 암흑기에 국가 권력에 기대지 않았더라면 현재와 같은 현상은 아니었을 것이라 보는데 그것이 아쉽다.
물론 지금도 늦은 것은 아니다. 정치적으로도 암흑기를 청산하고 민주화가 도래한지 십여 년밖에 안됐으니. 왜 광고카피에도 있지 않는가? ‘무조건 예뻐야돼’라고. 다시 말해 디자인이 제품구입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 요즘이다. 그러기 때문에 실사업계도 그러한 흐름에 맞춰 좀더 세련됨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실사 업계에 이러한 흐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좀더 넓게 확산될 필요가 있다. 디자인으로 승부를 봐서 소비자에게 호평을 받을 때 정말 기분이 좋은데 이러한 느낌을 나만 향유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디자인으로 평가받는 기쁨을 대다수 실사업계 종사자들이 느끼게 된다면 시장규모가 커지고 수익성이 높아지는 건 두 말하면 입 아프지.


힘들수록
선빵을 날려라~~

이문희 | 컬러애드 대표
  _실사, 디자인 / 7년 경력

히든카드는 역시 바로 ‘선빵’이다. 제대로 말하자면 늘 먼저 기획하고 제시하는 사업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기획과
아이템, 아이디어 등을 평소에 꾸준히 준비해놓아 어떤 클라이언트의 의뢰가 들어
오더라도 한 층 더 높은 수준의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어야 모두가 다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을 확률이 높아진다.

옛날 무림시대의 고수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싸움불변의 법칙, 선빵. 일단 선제공격을 해야 승산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네 삶이 피 비린내 나는 무림시대의 그것과 다를 바 무어냐.
모든 것을 걸고 맨 주먹으로 버텨내야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이다. 싸움에도 전략이 있는 법. 이 대표만의 히든카드는 역시 바로 ‘선빵’이다. 제대로 말하자면 늘 먼저 기획하고 제시하는 사업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기획과 아이템, 아이디어 등을 평소에 꾸준히 준비해놓아 어떤 클라이언트의 의뢰가 들어오더라도 그것보다 한 층 더 높은 수준의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어야 모두가 다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확률이 높아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 왠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당장 내일 숙제도 내일 겨우 하는 판에 미리 미리 준비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이 대표는 “이런 업무 방식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도움이 필요하다. 늘 곁에서 함께 힘이 되어 주는 직원들이야 말로 바로 나의 가장 큰 재산이다”라며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했다.
“과거 급하게 막바지 작업을 하던 도중 함께 일을 하던 직원이 갑자기 연락을 두절하고 나오지 않아 혼자서 밤을 꼬박 새며 겨우겨우 작업을 마친 경험이 있었다.” 그 때만 생각하면 너무나 속이 상한다고 말하는 이 대표의 눈길에는 인터뷰 중에도 열심히 작업을 하느라 분주한 직원들에게 보내는 따스한 눈빛이 서려있었다. 역시 천상천하 유아독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거다. 믿을 수 있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끊임없는 발전의 길.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진정한 사인산업의 발전을 위한 고수들의 길이 아닐까? 함께 선빵을 날릴 자들이여, 컬러애드로 모여라.

50만원 달랑 들고 창업,
주위 반대 무릎쓰고 이겨내

김래진 | 대성 대표
  _사인제작 / 19년 경력

사인업이 천직이라 여기고 하루 3시간씩 자며 3년간 30만원씩 받고 다른 사람
밑에서 일했다. 아무리 일이 어렵고
힘들어도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슴은 벅차올랐다. 그렇게 일한지 3년
만에 점포를 갖게 됐다. 그리고 창업자금 50만원으로 시작한 사업은 날로 번창해서 1년 만에 자가용도 샀다.

김래진 대표는 사인업계에 종사하기 전, 멀쩡하게 잘 다니던 직장이 있었다. 보수도 괜찮고 부모님도 좋아하시는 좋은 직장이었다. 그러나 사인업계에서 일하는 한 친구를 알게 되면서 사인에 대한 매력에 빠져버렸고,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사인업계에 발을 들였다. 그러자 부모님은 1년 동안 그의 얼굴도 보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사인업이 본인의 천직이라 여기고 하루 3시간씩 자며 3년간 30만원씩 받고 다른 사람 밑에서 일했다. 아무리 일이 어렵고 힘들어도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기쁨으로 그의 가슴은 벅차올랐다. 그렇게 일한지 3년 만에 본인의 점포를 갖게 됐다.
그리고 창업자금 50만원으로 시작한 사업은 날로 번창해서 1년 만에 차도 샀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은 결코 쉽게 이뤄낸 결과물이 아니다. 발주 하나 들어올 때마다 남는 돈을 아껴 드라이버나 사다리 등 작업에 필요한 공구들을 마련했다. 이렇게 꾸준히 모으고 준비한 결과, 지금은 지역 내에서 1, 2위를 다툴 정도로 크게 성장해 발주 수량도 많이 받고 가장 큰 간판 작업을 거의 다 작업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성공했다기보다는 이루고자 했던 것의 80%정도를 이룬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겸손함을 보였다. 이처럼 처음 사인업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이렇게 어렵게 시작했지만, 그는 단가 경쟁이 심한 지금이 더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랑스러운 아들 딸이 곁에서 그를 응원하고 있기에 기운이 솟는다.
친구들과 손잡고 지나가면서 아빠가 작업한 간판을 보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딸, 작업하고 있는 아빠를 찾아와 따뜻한 음료수를 건네는 아들은 김 대표의 에너지다. 이렇게 귀여운 아들 딸이 그를 지원사격하고 있으니 빠져나가려던 기운도 다시 솟는다.

거래처에서 찾아와
바닥에 누워 “돈 내놔”

손재용 | 다진기획 대표
  _사인제작 / 17년 경력

예전에 98m짜리 큰 간판을 제작한 적이
있는데 발주 준 사람이 돈을 떼먹고
외국으로 도망가 버렸다.
그러자 관련 거래처에서 사람들이 와서
돈 내놓으라며 누워버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집사람도 그때 여파가 굉장히
크다. 오랫동안 이 일에 종사하다 보니
이제 그런 손님은 눈에 보인다.

사인업계에 종사한지 17년째인 손재용 대표는 몇 년 전 큰 위기를 겪고도 평생 직업으로 삼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사인업계에 대한 애정이 깊다. “예전에 98m짜리 큰 간판을 제작한 적이 있는데 발주 준 사람이 돈을 떼먹고 외국으로 도망가 버렸다. 그러자 관련 거래처에서 사람들이 와서 돈 내놓으라며 누워버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집사람도 그때 여파가 굉장히 크다. 오랫동안 이 일에 종사하다 보니 이제 그런 손님은 눈에 보인다”며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했다.
이러한 뼈아픈 경험이 있어서 일까. 그는 현재 작업이 끝난 후 견적을 넣는다고 한다. “원칙은 견적을 낸 후 수금을 하는 것이지만 나는 시공이 끝난 후 세세하게 따져서 견적을 넣는다. 시달리고 당하다 보면 너무 힘들어서 금액을 따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고 그가 말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을 겪고 나면 정말 관두고 싶을 때가 한두 번도 아니었을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밖에 나가서 정수기 팔아봤자 몇 대나 팔겠나. 그래도 사인업계에 종사하면 일부러 만나려고 애써도 못 만나는 고위직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유대관계도 맺고.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이 어디 있겠느냐”면서 김 대표가 대답했다.
이제는 거센 비바람도, 글로벌 금융 위기도, 모두 김 대표를 막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크게 데여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법도 한데, 사인업계 매력에 퐁당 빠져서 ‘앞으로 평생 직업으로 삼겠다’는 말을 할 정도니.. 김 대표와 사인업계는 진정 하늘이 맺어준 인연인가 보다.

제발 결제 좀
제대로 합시다

김진호 | 다인공간 실장
  _사인디자인, 제작 / 15년 경력

작업이 끝난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결제를 받지 못한 상황이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시공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즐겁고 의욕적으로 함께 일을 진행했는데 완성이 되자마자 나 몰라라 하는 그 회사의 태도다. 우리 회사 말고도 얼마나 많은 사인업체들이 그동안 그 회사에게 이런 일을 당했을지 분통이 터진다.

어떻게 보면 사인업계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라고도 할 수 있는 결제 문제. 정말 확실히 해야 한다. 흙 파먹으면서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돈 한 번 떼어 먹힌 적 없으면 어디 가서 사인 일 좀 한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돈을 떠나 함께 작업을 했던 서로간의 신의를 져 버린 꼴이니 참 못 볼꼴이다.
김 실장은 “사인문화 기사에도 실렸던 곳의 사인작업을 한 적이 있다. 이미 기사가 난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결제를 받지 못한 상황이다. 더욱 어이가 없는 것은 시공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즐겁고 의욕적으로 함께 일을 진행했는데 완성이 되자마자 나 몰라라 하는 그 디자인 회사의 태도이다. 우리 회사 말고도 얼마나 많은 사인업체들이 그동안 그 회사에게 이런 일을 당했을지 분통이 터진다. 거기다 이번 사례 말고도 끝나지 않은 결제가 상당하다. 사인업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참고 기다리는 것 하나는 확실하게 배웠다. 이건 좋은 건가?”라며 씁쓸하게 웃는다. 답답하기 그지 없는 현실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사인 시장은 워낙 하청에 하청을 거듭하는 복잡한 구조의 잡업들이 대부분이라 관계정리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작은 구멍이 댐을 무너지게 만든다. 구멍을 메울 수 있는 명확하고 확실한 법적 제도나 규약이 시급한 상황이다.
김 실장은 “건설 경기가 풀려야지 사인경기도 풀릴 수 있다”고 말한다. “암만 물을 뿌려봤자 순식간에 얼어버리면 백날 시트를 같다 대어 봐도 붙을 리 없고 꽁꽁 굳어진 땅에 땀 흘리며 삽질을 해 봐야 파질 리 없다. 하지만 따듯한 봄은 올 것이고 굳어버린 경기는 언젠간 풀리게 되어 있다. 거기다 우리에게는 드라이어와 드릴이 있지 않은가. 희망찬 내일을 위해 얼른 전원을 꼽자!”

오천원 차이 때문에
푸념하는 고객 보며 울상

김재용 | 쥬빌리디자인 대표
  _실사 / 10년 경력

과거에는 현수막 주문이 많아 매출이
높았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인터넷에서
가격을 다운시켜 버리는 바람에 공들여서 디자인해도 고객들은 5천원, 만원 차이로 비싸다고 푸념을 하니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김재용 대표와 사인업계는 정말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인가 보다. 과거 사인업계에 종사했다가 5년 넘게 다른 직장에서 일했는데, 다시 사인업계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김재용 대표는 1992년부터 2001년까지 경남 진주에서 사인업계에 종사했었다. 그러다가 개인 사정으로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서울에서 보험업계에서 일했다. 하지만 그는 사인업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올해 4월 다시 사인업계에 발을 들였다.
“사인업계 일은 노동과 함께 창의적인 부분도 있어서 매우 재미있다. 예전 사인업계에 종사했을 때 굉장히 재미있게 일했었다. 디자인을 배우려고 가까운 섬유디자인학과로 편입해서 다녔을 정도로 관심과 애정이 있었다”며 사인업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는 과거 사인업계가 잘나가던 시절과 달리 제 살 깎아먹기 하고 있는 단가경쟁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과거에는 현수막 주문이 많아 매출이 높았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인터넷에서 가격을 다운시켜 버리는 바람에 공들여서 디자인해도 고객들은 5천원, 만원 차이로 비싸다고 푸념을 하니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하지만 그는 치열한 단가 경쟁 속에서도 ‘창의적이고 좋은 디자인을 해서 제 값을 받자’는 영업을 펼치고 있다. “디자인은 설계다. 고민하고 노력하는 만큼 그 값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무조건 1:1로 만나는 영업을 하고 있다. 인터넷보다 조금 더 비싸지만 혼을 담은 디자인을 만들겠다며 고객들을 설득한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사인업계에도 영업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보험업계에서 일을 해보니 영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더라. 옥외광고인들도 마케팅이나 영업에 관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일이 오기를 기다려서는 안된다. 직접 고객을 찾아가는 영업을 해야한다”며 영업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SignMun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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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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