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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디자인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2008-08-01 |   지면 발행 ( 2008년 8월호 - 전체 보기 )

공공디자인,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보기 좋은 떡 만들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정부와 각 지자체를 중심으로 ‘공공디자인’이 화두로 등장했다.
게다가 서울시는 작년 상반기에 디자인서울총괄본부를 설치하면서 이러한 분위기에 불을 지폈고, 지난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공공디자인을 이명박 정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로 공표하면서 관련 업체들과 시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사인업계에서는 공공디자인 정책으로 인해 ‘보기 좋은 떡 만들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만이 커지고 있어 문제다. 글_김유승

새 정부 출범 전부터 공공디자인 정책 강력 시사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정부와 전국 지자체에서 올 한 해 공공디자인과 관련해 책정해 둔 예산이 적어도 1,840억 원 이상이라고 밝혔다. 이 중에서 사인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은 최소한 절반 이상이라고 한다. 세상사 어디를 가더라도 돈이 몰리면 사람이 몰리고 분쟁도 생기는 법이다. 공공디자인 정책 중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인업계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공공디자인’은 최근 2~3년 전부터 국내에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다. 해외에서는 도시 디자인, 경관 디자인 등이 도시경관 정비와 관련한 용어로 쓰이고 있다. 도시 디자인 전문가 중에는 공공디자인은 한국적인 상황에서 등장한 용어로 정의가 모호해서 너도나도 공공디자인 전문가를 자처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난 1월 인수위에서 발표한 프로젝트의 핵심은 도시 미관에 디자인 개념을 도입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프로젝트는 국토를 문화 인프라 확충을 통해 생활여건을 개선해 국가경쟁력을 높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 실행을 위해 도시공간 설계, 시설물 디자인 등이 조화를 이루도록 조정 체계를 도입하고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산하에 건축도시디자인분과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인수위는 이와 함께 난립한 간판을 정리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각 지자체에 디자인통합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간판을 정비하고 관리한다는 것. 당시 인수위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기자회견을 통해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진행하는 간판정비 사업은 도시얼굴을 새롭게 구성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간판 정비사업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당시 추진해 좋은 평가를 받았던 종로 업그레이드 프로젝트와 같은 맥락이다. 쉽게 말해 인수위에서 진행하는 디자인 프로젝트와 그 속에서 진행하는 간판 정비 사업은 이를 전국으로 확대한 개념으로 보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게다가 두바이를 예를 들어 간판이 도시의 얼굴이고 외국인들에게 비춰지는 한국의 이미지를 결정한다며 간판 정비사업에 대한 필연성을 주장했다. 그리고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처럼 간판이 무분별하게 난립한 곳이 없다며 간판 정비사업을 강하게 추진할 뜻을 밝혔다.

공공디자인 정책, 서울시 가이드라인으로 구체화
인수위가 발표한 디자인 프로젝트와 그 속에서 진행하는 간판 정비사업을 두고 사인업계 종사자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이다. 그리고 종로업그레이드 프로젝트를 우수 사례로 발표한 것에 대해 전문성이 결여된 의견이라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공공디자인 정책의 일환으로 등장한 대표적인 사례인 서울시 옥외광고물 가이드라인은 아예 사인시장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간판을 1업소당 1개만 허용하고 1층 채널사인의 규격은 45cm로 하며 창문이용광고물은 아예 금지한다는 내용이니 사인업계를 떠나 전 국민의 사생활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규정 일색이다.
사인업계 종사자들은 이러한 공공디자인 정책에 대해 정부가 공공디자인 프로젝트를 획일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중요한 것은 다양하고 창조적인 방향으로 가야하는 것인데, 현재 드러나고 있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그러한 부분이 상당히 결여돼 있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서울시 종로구의 한 사인 제작자는 “겉으로는 공공디자인이라는 포장을 하고 있지만 결국 사인업계 종사자들을 옭아매는 새로운 규제 장치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난립한 간판이 도시 미관을 저해하고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은 공감하지만 서울시 가이드라인은 헌법소원감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인업계 뿐만 아니라 영세 상인들에게 큰 피해
간판 정비사업을 공공디자인 영역으로 끌어들여 진행하면 각 점포와 간판의 아이덴티티를 살리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인데 정부의 공공디자인 정책은 이러한 요구와 반대로 가고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충남 홍성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사인 제작자는 “공무원들의 인식이 문제다. 무조건 숫자와 크기를 줄이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영세한 점포주들이 자기를 알릴 수 있는 장치는 옥외광고물 뿐이다. 대기업은 신문이나 TV에 광고를 할 수도 있겠지만 동네 약국이나 세탁소는 도대체 어떻게 광고활동을 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사인업계 뿐만 아니라 영세상인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도시미관 관리 차원에서 추진하는 공공디자인 사업에 대해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서울시의 옥외광고물 가이드라인 등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서울시 강남역 뒷골목에서 2년째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한 점포주는 “광고물 개수제한 등 획일적인 규제보다 도시와 산업구조, 건물 유형, 라이프스타일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주변 경관과 일체화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1개 업소에서 표시할 수 있는 간판의 총수량은 3개 이내로 한다는 현 조항이 유지되어야 한다. 건물 외벽의 색상과 재질에 대한 고려 없이 입체형으로만 강제하는 것도 다양성을 훼손하는 조치다”라고 밝힌다.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전국에 수많은 지점이나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광고주협회 측은 “정부의 공공디자인 정책은 개별 지자체의 옥외광고물 담당자에 따라 주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고, 그 운용에 있어 다양성이 발생함에 따라 동일한 기업에서 지자체별로 다른 옥외광고물 규정에 맞춰 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지자체별로 단속 실적위주에 따라 업무를 평가하므로 과잉단속이 비일비재하다”고 밝힌다.

공공디자인 미명하에 현수막 수십만 장 철거
과당경쟁과 이에 따른 단가하락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사인업계에 정부와 각 지자체의 강력한 규제와 단속이 겹쳐지면서 고사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공공디자인이라는 미명하에 사인업계의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례로 서울시는 공공디자인을 기치로 내걸고 지자체가 솔선수범해 행정 현수막을 완전히 없애고 일반 현수막도 강력하게 없애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작년에 서울시 전역에서 약 30만 개에 달하는 현수막을 철거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울시가 발표한 강력한 현수막 규제정책과 가이드라인은 그야말로 핵펀치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시의 정책은 다른 지자체에 빠른 속도로 파급될 것이라는 예상이 이어지면서 이러한 우려와 푸념은 비단 서울에서 활동하는 업체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수많은 실사연출 업체들이 모여있는 충무로 일대에는 이러한 위기감에 대해 토로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충무로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는 한 업체 관계자는 “현수막을 위주로 하는 업체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다. 현수막 물량이 작년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었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고 말한다.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협소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주차단속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의견도 등장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실사연출 업체 관계자는 “도대체 차를 댈 곳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불법주차를 할 수밖에 없는데 단속을 당하면 울화통이 터진다. 공공디자인 정책 역시 이와 유사하다. 서민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홍보활동을 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기만 좋으면 뭐하나, 먹고살기 힘들면 다 헛수고
이러한 표면적인 내용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공공디자인 관련부서들이 각 지자체에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사인업체의 설 자리가 과거에 비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광고물 정비사업 공개입찰에서 이러한 분위기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인테리어, 환경 디자인 업체와 사인 업체들이 동시에 입찰에 참여할 경우 사인업체를 배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사인기획과 디자인 전문업체에서 활동해 온 한 사인기획 전문가는 “인테리어나 환경 디자인 업체와 비교하면 사인업체들이 디자인 능력면에서 비교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입찰대상이 사인이기 때문에 사인의 재료, 제작방식 등에 대한 전문성은 사인업체가 월등하다. 하지만 입찰심사를 담당하는 디자인 전공 교수나 공무원들은 그저 보기 좋은 쪽만 선택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사인의 기능, 광고효과, 점포주의 성향, 건물의 위치와 형태 등 수많은 변수들을 고려해야 하는데, 이러한 변수들은 차치하고 그저 ‘보기만 좋은’ 쪽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보기 좋다’는 뜻은 대부분 ‘작은 입체형’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인 전문가들을 배제한 공공디자인 정책에 대해 사인업계에서 불만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인 하나를 완성하려면 각종 재료, 디자인, 전기, 광고, 건축, 컬러, 법규 등 무수한 측면이 존재한다. 이 중에서 어느 하나만 강조하게 되면 불협화음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공공디자인 정책들에 대해 불만이 등장하는 것은 이러한 수많은 측면 중에서 오직 디자인만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아무리 보기 좋은 것이라도 먹고살기 힘들면 다 헛수고다.

<SignMun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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