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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근도테크놀러지 엄영철 대표이사
2007-08-01 |   지면 발행 ( 2007년 8월호 - 전체 보기 )

(주)근도테크놀러지 엄영철 대표이사
기적은 없다, 뿌린 만큼 거둔다


행동주의, 실천주의는 CEO가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말보다 행동을 앞세워 솔선수범을 보였을 때 진정한 리더쉽이 생기기 때문이다. 추진력 있는 행동주의는 조직을 활성화하고 적극적인 실천주의는 구체적인 성과를 나타낸다. 한마디로 CEO는 기차의 기관차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조직을 목표달성이라는 종착역으로 이끌어야 한다. (주)근도테크놀러지 엄영철 대표이사도 행동, 실천을 중시하는 최고경영자다. 그는 회사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그러했다. 
글 : 염기학

윈드서핑 애찬론자
“차는 뭐로 하실래요?”


엄영철 대표이사는 깔끔하게 꾸며진 사무실로 들어서면서 필자 일행에게 차를 권했다. 그런데 손수 직접 준비해서 차를 내놨다. 대개 직원을 시켜 가져오게 하는데 직접 준비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회사 방침 상 그렇다고 한단다. 스스로 차를 대접하는 CEO. 흔하지 않는 장면으로 인터뷰를 시작하자 뭔가 색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엄 대표와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사회체육 윈드서핑 연합회 회장’, ‘대한 윈드서핑 연합회 부회장’이라는 이색 약력이 주제로 떠올랐다. 역시 색다른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져버리지  않았다. 원드서핑과 (주)근도테크놀러지 최고경영자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증부터 풀고 가자.
“81년에 근도산업((주)근도테크놀러지 전신)을 설립한 후 영국 출장 갔을 때 어느 해변에서 처음 윈드서핑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능 스포츠맨이라고 자부하던 저로서는 이 특이한 스포츠에 너무나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윈드서핑 하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장비에 붙어 있는 상표를 보니 프랑스 회사였습니다. 그 다음날 짐 싸서 프랑스로 가서 장비를 수입했죠. 한국에 최초로 윈드서핑을 수입했던 것입니다.”
그 후 근도산업 스포츠사업부가 윈드서핑 장비를 국내에 보급하는 역할을 했다. 88년 올림픽 때는 강상제(江上祭)를 진행하면서 한강 뚝섬을 윈드서핑 장소로 사용할 수 있게 서울시로부터 허락을 얻어냈다고 한다. 그리고 흩어져 있던 윈드서핑 관계자들을 통합시키는 역할까지 수행했다. 엄 대표가 이렇게 윈드서핑을 좋아했던 이유는 자연에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대체로 공간적인 제한이 있죠. 예를 들면 스키, 테니스는 스키장, 테니스장이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해야 합니다. 그러나 윈드서핑은 바다가 다 내 그라운드가 됩니다. 자연과 친구가 되면서 불어오는 바람을 이용하죠. 보드(board)와 세일(sail)이 자기 몸과 하나가 돼 파도를 비껴갑니다. 스트레스 푸는데 최고죠. 레저스포츠의 넘버원은 바로 윈드서핑입니다.”
이 윈드서핑 애찬론자는 사물이나 상황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의 큰 모습을 보고 윈드서핑을 좋아했듯이 사업시작 아이템도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을 거시적으로 바라보는데서 찾았던 것이다.

남이 먼저 손 댄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의 침구류 사업을 돕고 있었던 엄 대표는 일본에 출장 갔다가 깨끗한 일본 거리를 목격했다. 거리환경적인 측면으로 시야를 넓혀 그 이유를 찾아보니 간판이 깨끗해서 그렇다는데 주목했다. 간판이 왜 깨끗할까? 페인트보다 점착시트를 더 많이 써서 간판을 제작하기 때문이라는데 또 주목했다.
“일본에서 페인트 칠이 떨어진 간판을 보지 못 했어요. 자세히 알아보니 페인트가 아니라 점착시트로 한 것이었습니다. 64년 동경 올림픽 때 정부가 환경미화 측면에서 점착시트 활용을 적극 추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 점착시트 수준이 상당히 높았죠. 반면 80년대 초반 우리나라 간판 소재 부문은 너무 열악했습니다. ‘안되겠다. 소재를 도입해서 사인의 품질을 높여보자’라는 의도에서 1981년 1월 3일 근도산업을 창업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소재를 수출하는 있고 일본이 가장 큰 시장이 됐습니다.”
사인 품질 향상이라는 엄영철 대표이사의 의도는 또 다른 아이템, 디지털프린팅의 도입으로 이어졌다. 80년대 중후반만 하더라도 손으로 페인팅해서 사인을 많이 만들 때고 디지털프린팅이라고 해봤자 외국에 출력의뢰해서 시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고 한다. 엄 대표는 시스템을 구입해서 직접 출력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해외 시스템 판매업체를 물색했다. 마침내 89년에 뷰텍의 2.1m 폭 에어브러쉬 방식 프린터를 35만 달러에 구입했다.
“우리나라에 처음 디지털프린팅 시스템이 도입된 것입니다. 저는 출력을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한국에 보급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죠. 그러나 그 당시 한국에는 아직 시스템을 구입할만한 회사 없어 일단 프린팅 서비스를 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했습니다. 그 후 프린팅 전문회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죠.”
엄영철 대표는 남이 먼저 손 댄 것은 하고 싶지 않다는 젊은 패기로 디지털프린팅 시스템을 누구보다 앞서 들여왔고 보급까지 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근도가 도입한 디지털프린팅 시스템은 국내 대형 옥외사인 제작개념에 변혁을 가져왔고 사인의 그래픽 표현시대를 여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지 않고 프린터 개발에 착수했다. 개발 동기는 오직 하나, 오기였다고 한다.

자존심 상해 프린터 개발 착수
“중국의 큰 프린터 제조회사들은 과거에 거의 한번씩 근도를 방문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디지털프린팅에 대해 실컷 알려주고 정작 프린터는 중국이 만드는 상황이 벌어지니까 자존심 상하고 과연 근도는 무엇을 했는가라고 자문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사업을 마무리한다하더라도 프린터만큼은 세계적인 제품을 만들겠다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2003년에 순수 국내기술로 디지털 프린터(모델명: SupraQ 3300, 2600) 개발에 착수했고  2004년에는 국내 최초의 대형 디지털프린터, SupraQ 3300을 뉴질랜드, 러시아, 스페인, 미국 등 해외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대형 디지털프린터 3대 메이저 회사 중 하나인 누어(NUR) 사에 주문자상표부착 방식(OEM)으로 납품했다. 인터뷰 하던 날 아침에도 3대가 선적됐다. 잉크회사인 세리콜을 인수한 후지필름(후지 세리콜)이 근도 대리점이다. 엄영철 대표는 해외의 좋은 상품을 골라서 도입한 후 다시 국산화해서 수출을 했을 때가 가장 기뻤다고 하면서 특히 누어와 후지 세리콜이 전시회에 나와 근도 장비를 진열하고 열심히 홍보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흐뭇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는 프린터 사업만 잘 되면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단다. 그것이 바로 조립식 사인이다. 시스템 사인, 모듈 사인이라고도 하는 이 분야는 미래를 대비해서 꼭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는 라이센스 계약을 맺었던 미국 업체와 협력하고 있지만 우리 디자인으로 한국화해서 다시 수출할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워낙 바빠 손을 못 대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정말 엄영철 대표이사는 바빠 보였다. 개인적으로 세우고 있는 계획이 뭐냐고 묻자 개인적인 일로 쓸 시간이 없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7월만 하더라도 중남미, 미국, 유럽 등 해외출장 스케줄이 있고 그 사이 틈틈이 개발업무 진행해야 하고 회의를 거쳐 경영전략 세워야 하는 등등. 사실 개인적인 일을 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이렇다 할 계획이 없다고 한다. 이렇게 바쁜데 그의 가정생활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아이들 위해 요리하는 CEO
“늦게 결혼해서 각각 15살, 11살인 딸, 아들 하나씩 두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직접 만듭니다. 아직도 매를 들 정도로 상당히 엄하지만 요리책 보면서 냉면, 돈까스, 매운탕, 생선구이 등을 만들어주는 자상한 면도 보여줍니다.
사랑한다는 백 마디 말보다 요리라는 행동으로 아빠 사랑을 자식들이 스스로 느끼게끔 해줍니다. 공부시키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온 식구가 거실 큰 탁자에 모여서 함께 공부합니다. 내가 직접 책을 읽으니까 애들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더군요. 공부하라, 공부하라 여러 번 말하는 것보다 효과적입니다.”
이렇듯 엄 대표는 회사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스스로 실천하고 행동하는 모습에 중요성을 부여한다. ‘기적은 없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덕목을 평상시 강조하면서 최고경영자는 솔선수범으로 보여주는 것 밖에 없다고 말한다.
“열심히 땀 흘리고 일 했을 때 거둬들인 곡식이 내 것이 된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직원을 만드는 것이 CEO가 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자세를 견지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회사명 ‘근도’는 원래 ‘정도’였다고 한다. 바를 正, 길 道. 옳은 길만 가자는 뜻을 담고 있다. 이것을 뿌리 根자의 ‘근도’로 바꿔서 나무뿌리처럼 흔들리지 않고 올바른 길을 가자는 의미를 나타냈다. 엄영철 대표이사는 고객을 중시하고 최고로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 생각하고 26년 동안 (주)근도테크놀러지를 이끌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도 할 일이 많습니다. 신제품 많이 선보일 것입니다. 친환경적인 프린터도 나오고 산업자원부와 진행하고 있는 DTP 프린터도 계획하고 있어요. 더불어 전사방식 프린터, 새로운 UV 프린터도 나옵니다. 이 제품들이 올해 다 마무리 돼야 하기 때문에 연구실이 난립니다.”
올해 계획에 이어 장기 비전으로 경쟁력이 강한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피력한다. 10년 후 근도테크놀로지는 좀 더 세계화가 돼있을 것이고 전 직원이 자부심을 느끼고 다닐 수 있는 회사가 돼있을 것이라고 미래 모습도 그려본다.
어린 시절 건축가가 꿈이었던 엄영철. 그는 최고경영자로서 행동주의를 내세우면서 한 회사를 건축해왔다. 그는 개인적으로 쓸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한 회사를 건축해왔다. 그는 눈을 감을 때까지 일 하고 싶은데 하나님이 그때까지 힘을 주신다면 감사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에게서 전형적인 CEO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약력: 1955년 生 / 1974년 홍익고등학교 졸업 / 1980년 연세대학교 체육학과 졸업 / 1981년 근도산업 창업 / 1989년 (주)근도트레이딩 대표이사 취임 / 1990년 사회체육 윈드서핑 연합회 회장 / 1991년 대한 윈드서핑 연합회 부회장 / 1998년 (주)이공이공 대표이사 취임 / 2002년 근도디지털테크놀러지 상해 유한공사 설립

<발문>
“열심히 땀 흘리고 일 했을 때 거둬들인 곡식이 내 것이 된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직원을 만드는 것이 CEO가 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자세를 견지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SignMun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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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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