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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정보 디자인 거리에서 길을 잃다
2005-04-01 |   지면 발행 ( 2005년 4월호 - 전체 보기 )

먼저 간단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서울에서 1000번을 타면 어디로 갈까? 보기 1번 일산, 2번 인천, 3번 의정부, 4번 아무데나. 정답은 모두 맞다. 왜냐하면 서울의 각 위성도시에서 서울역이나 시청, 광화문으로 가는 버스는 대부분 1000번이기 때문이다. 각 지역별로 서울 중심부로 연결되는 버스에 알기 쉽게 ‘1000’이라는 번호를 사용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것들이 한 곳에 모였을 때 생길 불상사는 고려하지 않은 결과다. 그러니 외국인 친구, 아니 지방에서 올라오는 친척에게 서울역 앞에서 빨간색 1000번 좌석버스를 타면 우리집 앞에 바로 올 수 있다고 알려줬다가는 큰 낭패를 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 공공 디자인의 현실이다.

글 : 김경균(그래픽디자이너 / 정보공학연구소장) 1801-ho@hanmail.net

공공 디자인인가, 관공 디자인인가
대중교통수단 정보 디자인의 본질적인 문제는 그것이 바로 공공 디자인 영역이라는데 있다. 예로부터 사람들이 공유해야 하는 것들은 언제나 다툼의 발단이 되기 마련이었다. 공공이란 당연히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할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거나 담당 공무원만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결과를 발표하고 나면 뒤늦게 비판에 열을 올리거나, 철저하게 무관심해진다. 자동차 번호판이 그랬고, 서울시 버스노선체계가 그랬다.
공공 디자인 클라이언트는 분명히 그를 이용하는 일반 대중이다. 대중은 사용자인 동시에 클라이언트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인식조차 지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또 그 작업 진행 과정을 전혀 알 수 없거나, 참여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부여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담당 관공서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면 무턱대고 적응해 나가야만 한다. 적응이 아니라 세뇌에 가까운 경우도 종종 경험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 나라에는 공공 디자인은 없고 관공 디자인만이 판친다. 그러다 보니 클라이언트는 일반 사용자가 아니라 해당 관공서 최고 책임자가 돼버렸고, 마치 자기가 주인인양 개인적 취향에 따라 컬러나 서체를 결정해 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공공 디자인은 어느 날 갑자기 일방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때문에, 사용자나 관리자에 의한 커스터마이징, 즉 설치한 뒤 사용하면서 이뤄지는 ‘개량’이나 ‘수정’ 과정을 제대로 배려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사전에 사용자 테스트를 통해 발생 가능한 문제를 점검하는 과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사용자 테스트가 오랜 기간에 걸쳐 드러날 다양한 문제를 하나도 빠짐없이 짚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대중교통수단 인포메이션 디자인은 최초 계획 단계부터 개량이나 수정이 가능하도록 배려해야 한다. 이런 배려가 없기 때문에 결국 다양한 ‘땜빵용 스티커’가 등장한다. 매표소에는 때마다 인상하는 요금을 조금씩 더 큰 스티커로 만들어 붙여야만 하고, 승강장에는 기형적인 발바닥 모양 네줄서기 스티커가 바닥을 어지럽힌다.
정보 공급자인 관공서는 처음부터 이런 경우를 전혀 배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개량이나 수정 과정 역시 디자인 전문가가 관여할 수 없을 만큼 즉흥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디자이너가 작업한 결과를 관리자나 사용자가 제멋대로 고치는 것은 해당 당사자 처지에서는 당연히 불쾌한 일이겠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처음 계획 단계에서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현실에 맞게 수정해 나가야 할 필요성을 사용자가 찾아내 준다는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디자인 결과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결국 ‘관계’와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에 있다. 현재로서는 정보 제공자와 사용자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원천적인 관계를 만들 수 없었다는 것과, 거기에 따른 개량이나 수정을 예측하고 그 여지를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다.
지하철에 새 노선을 개통한다면 그 부분만을 추가해 전체 노선도를 이해하기 쉽게 디자인할 수 있는 여지는 없을까? 만약 10개 이상 노선이 생긴다면 각 노선 컬러 차이를 사용자가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을까? 환승역에서 최단 이동 거리와 시간을 미리 예측해서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관계와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정보 디자인 본질은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프로세스)에 있기 때문이다.

로컬과 글로벌 틈새에서
모든 커뮤니케이션 활동은 메시지 발신자와 수신자가 기본적인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같은 문화나 언어권 안에서 주고받는 메시지가 이해하기 쉬운 것은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다채로운 문화적 아이덴티티가 맞부딪힐 수밖에 없는 현재와 같은 글로벌 사회에서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인 표현이 과연 얼마나 가능할지 의문이다.
월드컵을 치르면서 모든 지하철역 이름에 한자를 병기하느라 대대적인 ‘땜빵’이 이뤄졌다. 그러나 현재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에서 사용하는 한자는 표기하는 형태 자체가 다를뿐더러 발음도 전혀 다르다. 그렇다면 서둘러 표기한 한자 역 이름이 과연 얼마나 글로벌한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할 수 있었을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현재 모든 지하철 환승역에는 삼태극 모양 아이콘이 붙어있다. 이는 분명히 한국적인 지역성(로컬리즘)에 근거한 디자인 표현이다. 그러나 외국인이 과연 이 삼태극 아이콘을 보면서 쉽게 환승역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떤 외국인은 이 삼태극이 붙어있는 역에서는 관광 토산품을 팔고 있다고 인식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서울시 버스 체계는 도입 단계부터 큰 몸살을 앓으면서 시작했다. 문제점은 지금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대중들은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우선 명확한 컬러로 버스 종류를 구분했다는 것은 정보 디자인 측면에서 봐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데 버스 측면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R, B, G, Y 영문 이니셜 기능은 무엇일까? 혹시 색맹을 위한 배려일까? 아니면 모든 시민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영어 교육이라도 시킬 요량일까? 오히려 그 자리에 목적지를 명확하게 알리는 것이 정보 전달에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최근 서울시는 영문 이니셜이 있던 자리에 공익 광고를 붙이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누구나 느끼는 불만이겠지만 버스 정류장에 붙어있는 노선도는 정말 읽기 힘들다. 출발지와 도착지 노선을 불필요하게 2번 반복해 혼란을 가중할 뿐만 아니라 글씨가 작아 알아보기조차 어렵다. 또 밤이 되면 어두워 아예 보이질 않는다. 흔히 사용하는 백라이트는 광고판만 환하게 밝히고 있다.
정보 디자인은 다른 디자인 장르에 비해 좀 더 객관적 근거에 따르는 커뮤니케이션 영역이다. 그러나 그 객관성은 글로벌과 로컬 틈새에서 종종 길을 잃고 만다. 붉은색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는 중국인, 나치 군복과 비슷한 진한 녹색에 히스테릭하게 반응하는 프랑스인, 녹색 사과를 보면서 파란 사과라고 말하는 한국인이 이제 서울에는 공존하고 있다. 문화적 충돌이 일어나는 글로벌 사회에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객관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기호는 때때로 암호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 디자이너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Generalist)가 돼야 한다.

서울대입구역에는 서울대가 없다
공공 정보를 다루는 디자인은 그 사회와 문화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런데 그 거울 위로 사리사욕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때때로 공공성을 가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서울지하철공사에서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일정기간 역 이름을 임대하겠다고 나섰다. 설령 그것이 발표한 것처럼 ‘지하철 종합안전대책을 추진하기 위한 재원 확보’라는 공공적인 목적이라고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발상이다.
역 이름은 해당 지역 지명을 근거로 하고, 지명은 서울의 오랜 숨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무리 서울이 지난 역사의 아픈 기억을 지워가며 기형적 발전을 거듭한 도시라고 해도 공공성을 띤 역 이름을 기업이나 개인에게 빌려준다는 것은 이런 서울의 숨결을 끊어버리는 상업주의의 망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서울대입구역에 내리면 서울대가 없다. 다른 대학 이름 역도 출구를 나오면 바로 교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부분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학교가 있다. 그런데 서울대입구역은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더 가야만 학교가 나온다. 그런데도 구태여 이 역에 서울대입구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대한민국 최고 대학이라 그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였을까? 오히려 이런 유치한 발상이 그 자존심에 먹칠을 한 것은 아닐까? 대학의 국제적인 경쟁력이 지하철 역 이름에서 나오는 것은 결코 아닌데 말이다.
아무튼 특정 기업이건 대학이건 간에 사용자에게 혼란을 줄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이런 발상은 공공 정보 전달 방법으로써 적절하지 못하다. 또 지하철에서 당연히 정보 디자인이 있어야 할 지점 상당 부분이 이미 상업주의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눈에 잘 띄는 좋은 자리는 전부 광고가 차지하고 있다보니 노선도가 목을 직각으로 꺾어야 읽을 수 있는 천정으로 쫓겨난 사례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공공, 기업, 개인들이 나름대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하나의 세계를 나눠 가지는 일이다. 지금 공공 정보 디자인은 그 틈새에서 가장 힘든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

오감 자극을 통한 새로운 기능성 확보
지하철에서도 시각적인 정보 외에 청각적인 정보를 일부 사용하고 있다. 열차가 들어오기 전에 울리는 신호음, 안내 방송, 비상 경고음 등…, 그러나 어떤 것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열차가 들어올 때 신호음은 너무 경고성이 강하다. 그렇게 자극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열차가 들어온다는 것을 인식시킬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거슬리는 것은 역시 장애인용 에스컬레이터를 작동할 때 나는 소리다. 그렇게까지 유치한 소리로 그 사람의 장애를 과연 모두에게 알릴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잘 생각해 보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욱 많은 청각적 정보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각장애인에게 출입구 계단이나 화장실을 유도하는 작은 신호음이나 좋은 향기를 생각해 본다면 어떨까. 어떤 감각 기관에 손상을 입은 사람은 다른 감각 기관이 더욱 민감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결코 그 소리가 유치하거나 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감각 기관이 멀쩡한 사람이라도 지하 공간에서는 대부분 거리나 방향 감각을 상실하게 된다. 동서남북을 가늠하지 못할 뿐 아니라 환승역에서 다른 노선으로 이동하는 길이 지상에서 어디에 해당하는 곳인지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오히려 알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거리 감각이 아니라 시간 감각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 승객들은 목적지까지 앞으로 몇 정거장이 남았으니까 몇 분이 더 걸릴지를 스스로 예측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노선도는 사용자가 목적지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판단할 수 있도록 좀 더 친절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멕시코 멕시코시티 지하철 노선도에는 각 역 표시 위에 나비, 꽃, 별 등 작은 그림이 있다. 이는 문맹률이 높다는 점을 감안해 시민들에게 문자가 아닌 그림 정보로 그 역을 인식시켜 주기 위한 체계라고 한다. 1960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각 경기장이나 편의 시설을 알리는 픽토그램(그림문자)을 처음으로 도입한 것도, 외국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문맹률이 높은 시민들을 배려한 것이었다고 한다. 역 이름은 읽을 수 없어도 나비에서 갈아타서 꽃에서 내리면 된다고 인식할 수 있게 만든 배려. 이것이 바로 정보를 다루는 공공 디자인의 구실이다.
미국 보스턴 지하철 노선도에도 이런 그림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보스턴도 멕시코시티처럼 문맹률이 높은 것일까? 그게 아니라 이는 어린이들을 위한 배려라고 한다. 지루한 땅속을 달리는 지하철에서 땅 위 풍경을 상상할 수 있는 그림이 아이들을 즐겁게 만든다. “엄마, 얼마나 더 가야 할머니집이야?” 이렇게 물어보는 아이에게 “사과가 그려진 곳까지 몇 정거장 남아 있나 같이 세어볼까?”라고 말할 수 있다면 우리 지하철 공간은 더욱 따뜻해질 것이다.
감각이나 이미지 복합은 정보 디자인에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한다. 사용자 머리 속에 다양한 감각적 자극을 줌으로써 스스로 정보를 건축해 낼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갑자기 ‘다음 도착할 역을 소리나 냄새로 인식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상상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공공 디자인은 그 사회의 문화적 규범 안에서 얼마나 객관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런 디자인 활동은 결과적으로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효과에만 매달렸던 것이 사실이다. 세상에 빨리 알려지고 쉽게 금전적인 이익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분명히 이런 활동들은 더 간단하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정보 디자인이란 대부분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문제와 깊이 연관돼 있다. 좋은 정보 디자인일수록 자연스럽게 그 프로세스 속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공공 정보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은 ‘정보를 보기 좋게 가공하는 것’만이 아니다. 정보 제공자, 전달자, 그리고 그 정보 사용자가 상호 ‘이해할 수 있는 형식’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이런 상호 이해가 선행해야 비로소 모두에게 유용한 ‘공공 정보’를 디자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알립니다
대중교통수단 공공 정보 디자인에 대해 알아본 것에 이어, 다음 호에는 공공 시설물을 중심으로 정보 디자인 현황과 개선책을 소개합니다.

<SignMunhwa>

위 기사와 이미지의 무단전제를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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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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